석광훈 ㅣ 녹색연합 전문위원
검찰이 월성원전 감사원 감사 관련 100여명의 수사인력을 동원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직장과 자택 10여곳을 압수수색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뇌물수수와 같은 범죄 혐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정부의 에너지정책 사안에 뜬금없이 검찰이 나서는 행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이없게 만든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경제성과 상관없이 고리원전 1호기를 폐쇄 결정할 때는 왜 침묵했는지 궁금하다.
이번 논란의 진앙지인 감사원은 월성원전의 설계수명 종료 후 폐쇄 결정 과정에 경제성 평가만 감사했다는 논리였는데, 이런 논리는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원전 수명 연장에 대한 경제성 평가는 안전규제기준 및 그에 따르는 안전설비 보강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와 관련성이 적은 석탄발전소조차도 수명 연장을 신청할 경우 엄격한 대기오염물질 배출기준 충족 여부가 경제성을 결정하는 독립변수가 된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 시절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원전의 수명 연장 심사 당시 자체 중수로 안전성 기준도 없는 것은 물론 종주국 캐나다의 최신 안전기준도 무시한 채, 전혀 설계가 다른 미국 경수로원전의 기준으로 끼워 맞춰 수명 연장을 허락했다. 당연히 엉뚱한 곳에 설비가 투자된 월성원전의 수명 연장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종주국 캐나다의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간 관행적으로 정책감사를 배제해온 감사원이 원전정책에 대해 정작 했어야 할 정책감사가 있다면 바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종과 안전불감증이었다.
이번 월성원전 관련 압수수색 사태와 관련해 검찰은 사태의 진원지인 감사원도 아닌 야당의 고발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만약 검찰이 야당의 고발을 그리도 중요하게 여겼다면, 왜 지난해 야당 의원들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혐의 고발이나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 최모씨에 대한 사문서위조 혐의 수사 촉구는 1년 넘도록 무시해왔는가.
윤 총장 임명을 방조한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에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축산물 수입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세무서장이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자 윤 총장은 검찰 출신 변호사를 소개했고, 검찰은 번번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일었음에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진정한 죄는 주식투자 논란이 아니라 반드시 했어야 할 인사검증은 내팽개친 채 최악의 검찰총장이 임명되도록 방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는 원자력사업자의 뇌물을 받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원전에 매년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오하이오 주의회 의원에 대한 연방검찰의 구속수사와 법원의 유죄판결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마도 이런 일은 비리 세무서장과 함께 골프나 친 윤 총장과 휘하 검사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관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들만의 선택적 정의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원전 안전 문제는 검찰이 자신의 비리 혐의를 가리고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희생양으로 삼기에 너무나 엄중한 문제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본보다도 월등히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에게 원전 안전은 검찰의 정치 셈법에 놀아날 문제가 아니다. 검찰의 행태가 원자력 업계와 안전규제기관의 행보에 미칠 영향은 월성원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신고리원전 불량부품 납품 비리와 인증서 위조 사건을 잊었는가? 대통령 뒤에 숨어 이른바 ‘엄중 모드’를 즐기는 여당도 말장난만 하지 말고 제 할 일을 하기 바란다. 지금 여당이 하는 행태로 봐선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공수처가 출범하더라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운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