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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시아 노동자들이 전태일3법에 거는 기대 / 파미 파님방

등록 2020-11-16 19:07수정 2020-11-17 02:07

노동법 개정 왜, 어떻게

파미 파님방 ㅣ 인도네시아 스다네 노동정보센터 연구원

많은 인도네시아 노동운동 활동가들처럼 나도 전태일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내 삶이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의 영향은 지대했다. 2000년대 초반 대학생이던 시절 <전태일 평전> 영문본을 읽고 그 이름을 처음 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그때 <전태일 평전>은 인도네시아어로도 번역되어 활동가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그 후 나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서 전태일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의 봉제공장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착취에 대해 정부 당국과 노동조합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전태일이 여러 해 동안 쏟아부은 노고를 아직도 기억한다. 여느 노동자처럼 전태일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1970년 죽음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그가 화염 속에서 부르짖은 구호다.

세바스티안 마누푸티. 한인 업체가 밀집한 브카시 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이름이다. 노동권 쟁취 투쟁의 길에서 그는 전태일의 길을 따랐다. 2015년 자카르타에서 노동절 집회가 열리는 동안 분신을 한 것이다. 세바스티안은 공단 노동자들이 처한 가혹한 노동조건에 맞서 과감한 투쟁을 선택했다. 그 또한 화염 속에서 외쳤다. “인도네시아 전체 민중의 사회 정의를 위해 당신의, 우리의, 저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 행동을 감행하기 30분 전 페이스북에 적은 문구다.

한국의 전태일과 인도네시아의 세바스티안 마누푸티. 두 노동 열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고 노동권과 환경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업은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세계적으로도, 전략적 역할을 하는 선진 민주국가로 알려져 있다. 모순적이게도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축적해 왔고 세계 무대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환경 정의를 도외시했고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존중하지 않았다.

2012년에서 2014년 사이 아시아 노동 연구자들과 함께 몇몇 나라에서 삼성의 기업 관행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태국), 대만, 중국, 인도, 한국 등 조사한 모든 나라에서 삼성과 삼성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결사의 자유와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고 과도한 생산 목표를 설정하는 등으로 최소 노동기준을 보장하지 않았다. 이 역시 한국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아무리 케이팝과 영화로 소프트파워를 발휘한들 한국 기업이 노동권 무시로 악명이 높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건어물 상점으로 시작한 삼성은 현재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글로벌 생산 사슬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마이크로칩을 생산하게 되었다. 삼성은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확산된 후에도 두 자릿수 영업이익 증가를 누렸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은 노동자의 희생을 대가로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국은 아이엘오 핵심협약을 비준한 아시아 여러 나라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의지를 가지고 아이엘오 협약 87호·98호를 비준할 때 한국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2020년 ‘전태일3법’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도록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노조법 개정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넓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중대 재해에 대해 기업을 처벌하는 법안이 그것이다.

이 세 법은 전태일 이후 오래 지속된 한국 노동자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에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이 인권 존중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해외의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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