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식ㅣ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기획팀장
서울 가락시장 등 농수산물 공영도매시장의 거래제도와 관련해 오로지
경매제도만이 옳다고 주장한 양승룡 교수의 논거(11월26일치 21면)는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우선 경매제를 대표하는 시장처럼 인용한 네덜란드 알스메이르시장은 가락시장 등과는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곳이다. 산지에서 열리는 협동조합 판매장인데다가 다루는 품목도 과일이나 채소가 아닌 꽃(화훼)이다. 게다가 궁금하다. 양 교수는 왜 이곳 알스메이르시장에서조차 경매제 비중이 2004년의 82.5%에서 지난해 40.7%로 뚝 떨어진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것일까? 경매제의 가격변동성 때문에 사전에 가격과 물량을 정하는 직거래제도를 차세대 디지털 유통전략으로 삼고 있는 사실은 또 왜 무시했을까?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경매제가 ‘가격효율성’과 ‘비용효율성’이 더 높다는 그의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파리 룅지스, 신로마, 마드리드, 로스앤젤레스(LA), 베이징 신파디 등 세계 주요 나라의 소비지 도매시장에선 경매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경매제를 도입할 당시 벤치마킹했던 일본 도매시장도 이제는 경매를 강제하지 않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오타도매시장의 경매제 비율은 2020년 10월 기준 1.3%에 불과하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를 유일하게 같이 운영하는 서울 강서도매시장의 경락단가가 전국에서 최하위인 이유가 시장도매인제를 같이 운영하기 때문이란 주장은 정말 터무니없다. 농산물은 품목별로 단가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해 공영도매시장에서 마늘은 1톤당 303만원, 양파는 50만원으로 약 6배가량 차이가 났다. 시장 특성상 저단가 품목(양파·배추·무)을 많이 거래하는 시장은 전체 시장 거래단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 3개 품목의 거래 점유비중은 강서시장이 27%이고, 거래단가 1위인 진주시장은 14%다. 약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거래단가 상위시장(진주·원주·포항)과 하위시장의 차이는 취급 품목만 잠깐 살펴보면 상식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시장도매인은 가격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에 문제가 있으며, 경매가격 정보를 대가 없이 사용하는 게 불공정하다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다. 강서시장도매인의 가격 정보가 공개되는 홈페이지를 방문해본 적이 있는가? 무엇을 얼마나 더 공개해야 공정해지는가? 시장도매인이 일방적으로 경매가격 정보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매제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연구 보고서는 이미 많다. 강서시장도매인 거래물량은 우리나라 전체 공영도매시장의 4~5%에 불과한데, 이 미미한 수준에서도 경매제에 상당한 정보를 주고 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도매시장의 경락가격은 대형유통업체의 구매가격 협상에서 중요한 참고가격이면서 역설적으로 고품질 농산물의 가격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왜냐면 고품질 농산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도매시장의 농산물 경락가격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시장은 경쟁을 통해 효율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 중 경매제로 운영하는 시장(24곳)의 최근 10개년 평균 연간 성장률은 0.4%다. 반면,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 및 상장예외제를 병행하는 시장(7곳)은 1.7%, 시장도매인제 시장(1곳)은 4%에 이른다.
가락시장 등에서 경매제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시장도매인제와 경매제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면, 그만큼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득도 커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가락시장 출하자 1천명에게 물었다. 시장도매인제를 알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출하자 중 ‘시장도매인제 병행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72.4%였다. 이론이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논거와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자세를 낮춰 현실의 세상을 더 깊이 두루 살펴볼 일이다. 서울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