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ㅣ 주한 유럽연합(EU) 대사
파리협정 5주년을 기념하는 12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세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굳은 결의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날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담을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에 더 강력한 전지구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에 대한 답은 “그렇다”라고 할 수 있겠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 녹고 있는 영구 동토층과 아시아에서 속출하는 기상 이변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본질적인 질문은 아마 “우리에게 상황을 더 악화시켜도 될 여유가 남아 있는가?”일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우리는 유해한 탄소 집약 경제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의 탈탄소화에 투자해야 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유럽연합(EU)은 녹색 전환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2019년 12월,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역내 기후 중립 달성을 위한 새로운 성장 모델이자 로드맵인 ‘유럽 그린딜’을 발표했다. 녹색 및 디지털 전환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우리의 생산, 소비 및 생활 방식을 바꾸고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그 핵심 목표다.
발표 1년이 지난 지금, 유럽연합의 에너지, 산업 및 생물다양성 등 전 분야에 걸친 정책이 지속가능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이행 전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녹색 회복이 ‘뉴노멀’을 위한 “더 나은 재건”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실천과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유럽 그린딜의 목표는 좋은 의도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 어떤 국가도 전세계적인 도전 과제를 홀로 해결할 수 없다. 파리협정의 합의사항 이행에 글로벌 모멘텀이 생기고 있다.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약속한 국가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표를 환영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파리협정 및 그린딜 이행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프란스 티메르만스 유럽연합 수석부집행위원장도 한국의 다짐을 강조하며, 다른 국가들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세계적인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기후중립 달성을 목표로 삼은 가운데,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개최될 때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위한 명확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2030년 달성 목표 수준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를 위해 12월11일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이상 감축한다는 2030 목표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러한 목표는 유럽연합 기업, 산업 및 시민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저탄소 기술 비용의 가파른 하락을 가속화할 것이다. 일례로, 2010년과 2019년 사이 태양광 발전 비용은 82%나 감소했다. 상기 55% 목표를 달성할 경우, 향후 10년간 1천억유로, 2050년까지 3조유로를 절약할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의 더 나은 재건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이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야심 찬 장기전략 수립과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조정을 통해 기후행동 선도국가로 부상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내년 한국에서 개최될 제2차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와 영국에서 개최되는 26차 총회에 앞서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극적인 충격을 피하고, 코로나19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의 최대 피해자이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회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를 감당해야 할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협력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