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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의사시험 허용한 정부에 비관한다, 그러나 / 김윤

등록 2021-01-04 18:10수정 2021-01-05 13:50

시험 거부한 의대생 구제 결정 이후

김윤 ㅣ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값비싼 사교육과 부모 찬스를 동원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현실에서 고통받는 청년들은 더욱 설렜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정부가 국가시험을 거부한 의과대학생들에게 국가시험을 응시할 기회를 다시 주면서 공정한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는 또 한번 무너져내렸다.

지난여름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정부 정책에 반대해 의사들은 파업을 했고 의대생들은 국가시험을 거부했다. 의료취약지에 사는 응급환자와 중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반대해 국가시험을 거부한 것이었다.

많은 국민이 의과대학생들에게만 국가시험을 볼 특혜를 다시 주는 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정부는 전격적으로 국가시험을 볼 기회를 부여했다. 정부가 국민의 동의와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없었고, 의료계가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히지도 않았다. 의사들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 반대해서 파업을 했고 의대생들은 국가시험을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의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의료취약지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말대로 공정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국가시험을 허용하는 결단을 내릴 수는 있다. 정부는 3차 대유행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부족하고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지난봄부터 코로나19 환자 10명 중 8명을 공공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의 의료진은 1년 가까이 계속되는 과중한 근무에 지쳐가고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에 불안해한다. 이들은 “매일 밤 그만둘 거라고 얘기하지만, 눈앞에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칠까 봐 다음날 다시 출근한다”(<한겨레>)고 한다.

의사 국가시험을 허용해도 점점 지쳐가는 공공병원 의료진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작년 인턴 3182명 중 공공병원에 배정된 정원은 10%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환자 진료에 민간대학병원보다 더 적은 병상을 내놓은 국립대학병원은 제외한 숫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중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의료진의 노고를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 말대로 의사 국가시험을 허용하면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지난 11월 정부는 의료취약지 대책을 발표했다. 지방에 큰 병원이 없고 의사가 부족해서 서울에 비해 응급환자와 중환자의 사망률이 약 두배 더 높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알맹이는 없었다.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의사를 늘린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를 담보할 예산도 의대 정원 증원도 없었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의료정책들은 정부에서 대부분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정과제에 포함된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조차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추진되지 않았다. 이번 의료취약지 대책도 공수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도 간절히 소망한다.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과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의사 국가시험 재응시를 허용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현실화되기를 말이다.

지난여름 정부와 여당은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대한의사협회와 합의하면서, 의사협회에 백기 투항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와 여당이 약속대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이 결정되는 2월 말 이전에 의과대학 정원과 의료취약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말 정부와 여당이 국민을 위해 의사 국가시험을 허용한 것인지는 두달 뒤가 되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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