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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나는 건보공단 직원이 아닙니까?” / 전주희

등록 2021-02-03 17:04수정 2021-02-04 13:48

전주희ㅣ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여성노동자들이 2월1일부로 파업에 돌입했다. 1600여명의 공공기관 최대규모의 콜센터 업무를 정규직화하는 논의는 2019년 단 한차례 논의로 중단되었다. 당사자들은 회의에 초대되지도 못한 채였다.

건보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은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으로 외주화된 하청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고객센터를 민간 하청업체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공영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파업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콜센터 노조는 끊임없이 공단 측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공단 측은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건보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이미 원청(공단) 노동자들과 상당 부분 겹치고 있다고 말한다. 건보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의 일의 특성은 ‘콜센터’라는 이름을 걷어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업무는 단순 안내가 아니라 마치 주민센터나 공단의 각 지사가 민원 안내와 접수, 처리를 수행하듯이 동일하게 안내와 접수 그리고 처리를 위한 업무들을 수행한다. 게다 건보공단은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공단의 사번을 부여해 인사 및 업무능력을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그동안 용역 회사는 계속 바뀌었지만 입사 때부터 변하지 않는 것은 공단 사번으로 공단 업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나는 건보공단 직원이 아닙니까?”라는 항변은 이미 공단 직원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과 그럼에도 하청노동자 신분으로 온갖 차별을 겪는 불평등한 원청-하청 구조를 고발한다.

통상 외주화는 특정 업무를 외주화해 관리비용과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건보공단은 상담에 필요한 교육책자를 발간하며, 이들의 콜 수를 포함해 인사관리를 등록하고 이력을 관리한다. 매우 이상한 원-하청 구조이고 매우 이례적으로 비효율적인 하청노동자 관리방식이다.

이는 건보공단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전 국민의 정보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건보공단에 개인정보의 취합과 관리는 매우 핵심적인 업무다. 그리고 이 개인정보를 오히려 원청의 일반 직원보다 더 많이 열람하고 처리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업무 이력관리는 매우 필수적이다. 즉 건보공단은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업무를 ‘콜센터’ 직종으로 분류하여 저평가한 뒤 외주화한 것이다.

콜센터 노동은 대표적인 여성의 일이기 때문에 저평가되었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콜센터 노동은 노동권에서 배제된 하청노동자들로 채워지고,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가치 절하된 여성노동으로 채워졌다. ‘나는 공단 직원이 아닙니까’라는 항변에는 노동 안의 분할과 시민 내의 차별적 지위로부터 평등한 자격을 부정당해왔던 시간들이 켜켜이 묻어 있다.

모든 형태의 하청노동은 노동자들을 시민에서 ‘시민 자격이 없는 자’로 손쉽게 만들어버린다. 시민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하청노동자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그래서 대부분 엄두도 못 내는 권리가 되어버린다. 행사되지 못한 권리란 이미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업을 앞두고 ‘나는 건보 직원이 아닙니까’라는 항변은 ‘아프면 쉴 권리’, ‘휴가를 쓸 권리’,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 ‘파업을 할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선언이다.

선언은 어떤 응답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하고, 무엇보다 건보공단이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정규직 노조의 반대’를 방패 삼아 어떤 논의도 나서지 않고 있다. 과거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하면 100명이 넘는 해고자를 만들던 공단이 이제는 노조를 앞세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있다. 정규직화와 관련해 공정성 논란이 격해진 공공기관마다 ‘정규직 노조의 반대’를 방패 삼은 공단 책임자들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역설적이게도 어느 한쪽의 목소리를 과잉 대표했다. 지금 건보공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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