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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 ‘위안부’ 책임, 국제사법재판소 회부해야 / 신희석

등록 2021-03-08 04:59수정 2021-03-08 08:38

신희석 |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전환기정의워킹그룹 연구원

최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이자 여성 인권운동가로 2007년 미 하원 결의 121호 채택, 2017년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 연초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역사왜곡 논문 반박 등에 앞장서온 이용수 할머니가 한국과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촉구하였다.

지난 1월8일 우리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반인도범죄였음을 확인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은 한국의 관할권 면제(주권면제) 위반을 주장하며 ICJ 제소를 시사하였다.

이에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30년 ‘위안부’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7가지 요구사항, 특히 범죄사실 인정과 공식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ICJ 회부를 제안한 것이다.

물론 모든 소송에는 패소 리스크가 따른다. 1월8일 판결이 내려진 ‘나눔의 집’ 할머니 소송도 2013년 8월 조정사건으로 시작되어 일본의 불응으로 2016년 1월 소송 이행되었을 때만 해도 주권면제로 각하 전망이 우세했다.

우리 법원에서 패소했다면 ‘위안부’ 운동이 입었을 타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실제 2016년 12월 이용수 할머니 등을 원고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낸 소송은 5일 뒤인 1월13일 선고 예정이었으나 재판부가 돌연 변론을 재개하여 여러 추측을 낳았다.

이렇듯 국내소송 승소도 패소 리스크를 감수한 결과이고, 이용수 할머니는 이번에도 역시 고심 끝에 ICJ 회부를 촉구한 것이다.

유엔의 사법기관인 ICJ는 강대국의 국제법 위반에도 엄정한 태도를 보여왔다. 2014년 일본은 유일한 ICJ 소송에서 고래 남획으로 오스트레일리아한테 제소되어 패소하였다. ICJ는 1986년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 지원 사건, 2009년 비엔나(빈) 협약을 위반한 54명의 멕시코인 사형수 사건에서 미국에 패소 판결을 내렸고, 2004년 팔레스타인 장벽, 2019년 차고스 군도 ‘권고적 의견’에서 각각 이스라엘과 영국의 국제법 위반을 확인하였다.

ICJ는 판결에서 당사국이 회부한 각 법적 사안에 대하여 개별 판단을 내린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절실하게 요구하는 ‘위안부’ 제도의 범죄사실 인정은 유엔,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독일은 과거 전시 강제노동이 전쟁범죄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전후 조약으로 개인청구권이 포기되었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위안부’ 제도가 국제범죄가 아니라 주장하므로 ICJ의 범죄 확인은 피해자 인권구제의 핵심이 될 것이다.

국제법 위반에는 금전배상뿐만 아니라 위반 인정과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의 의무가 따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ICJ에서 역사 교육과 왜곡 반박 의무도 주장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개인청구권 포기 주장은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 1991년까지 일본 정부의 관여 부인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2015년 12.28 합의는 개인청구권에 관한 언급이 없다. 설령 금전배상 청구권이 포기되었어도 범죄 인정과 사죄, 역사교육 같은 비금전적 의무까지 조약으로 사라질 수는 없다.

2012년 ICJ는 11 대 3 표결로 독일의 전시 강제노동에 대한 주권면제를 인정하였지만 군대 성노예제는 강제노동보다 더 중한 범죄다. 기존 ICJ 판례가 안 바뀌면 우리 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 ICJ가 다시 주권면제를 인정하더라도 이는 절차적으로 한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를 제소할 수 없을 뿐 실체적 권리·의무에는 영향이 없다.

ICJ 재판은 과거 뉘른베르크와 동경 재판처럼 방대한 분량의 ‘위안부’ 역사 자료와 증언을 재판 기록으로 후세에 남기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는 교착 상태이고, 우리 법원의 판결도 일본 정부는 거부해버렸다.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 정부의 특별협정(special agreement; compromis) 체결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이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회부를 제안하면 일본이 독도 문제 등의 ICJ 회부를 역제안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마치 납치·강간 피해자와 합의를 논하는 자리에서 부동산 협상도 같이 하자는 것과 같다. 일본이 그런 상식 밖의 주장을 한다면 ICJ 회부 거부로 간주하면 된다. 국제사회도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는 우리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있으면 보편적 여성인권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차원에서 국제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일본도 ICJ 회부 요구가 있으면 말로만 국제법 준수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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