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박근영 육아도우미
올해 초부터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였다. 신문 구독 자체를 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누구도 신문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신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구독을 시작했다. 그리고 삶이 풍부해졌다. 모바일 뉴스는 대개 댓글을 보고 싶어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자극적인 제목일수록 댓글이 궁금했고, 공감이나 비추천을 누르는 게 다였다. 기사 내용이 재미있거나 링크 하고 싶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겨레>는 달랐다. 기사마다 사람의 냄새가 났고, 다시 읽고 싶은 내용의 기사를 재활용 보내기 전에 오려두었는데 벌써 한 상자를 다 채워간다. 앞으로 신문이 폐간될 때까지(그날이 오지 않으리라 믿는다) 구독할 예정이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한겨레>의 구독자층이 어떤지는 모르나 아마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 지지자가 많은 듯하다. 사설 논조나 논객이 대놓고 지지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가끔 있으니 그렇게 추측한다. 사회를 바꾸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투표로 정당과 정책을 지지하는 구조이니 정당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행태로 보아서는 이 당에 진보적인 정책과 행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실책도 있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신이 보수와는 다르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쪽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하기에 정책이 모순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 진보적인 어떤 정책도 실천하지 않았고 오히려 방해했고, 집권 초기 가졌던 진보여당에 대한 기대감을 무참히 무너뜨렸다.
<한겨레>의 할 일은 무엇인가. 진보 정책을 실천할 의지가 없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아프지 않은 충고를 하는 게 과연 전부일까. <한겨레>의 창간정신을 생각했을 때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연합을 촉구했다면 어땠을까. 사회복지에 대한 기사는 넘쳐나는데 사회복지국가가 무엇을 동력으로 그 정책과 지지를 이뤄냈는지 말하는 기사를 찾기 어렵다.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집단과 정당의 연대가 그 동력이다. 노동자 단체가 힘을 얻는 유럽에서도 진보당의 연합은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연합이 너무나 절실한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한차례의 크나큰 실패 때문인지 연합할 생각이 없고 그에 대한 주문도 없다. 통합진보당의 패배는 그들 내부의 과오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당 내부의 정치 싸움인가? 아니면 박근혜의 진보 죽이기인가? 이제 진보에서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한가?
<한겨레>가 어느 쪽의 편에 서라는 말이 아니다. 누구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킬레스건이라도 필요하면 건드려야 한다. 진보정당들의 참담한 선거 성적표와 진보언론의 미래가 전혀 무관할 수 없다.
진보는 이승만, 박정희 지지자나 태극기 부대와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진보는 사상이나 취향과 상관없이 약한 사람의 편이고, 기득권의 반대편이다. 개인의 다른 생각은 토의로 합의를 이루지만 정치는 힘으로 바꾼다. 극단적 양극화로 1%밖에 안 되는 초기득권층이라지만 대중은 힘 있는 쪽에 서고 싶어 하며, 뺏으려는 사람보다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의 힘이 더 크고 절실하다. 그러므로 진보정당은 연대해야 한다. 재일동포 저널리스트인 신숙옥은 <화내는 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지’다. 공통점이 1%라도 있다면 (설사 미숙하더라도) 지지하자.” 신숙옥은 사회적 차별에 맞서기 위해 어떻게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제안했다. 진보언론은, 평생 만날 일 없는 1%의 초기득권층(사람)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기득권이 내세우는 성장 제일주의 프레임(=무지)에 맞서는 존재다. 그리고 이 존재의 동력은 연대의 힘에서 온다. 진보언론이 이 연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한 것이 오해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