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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 사진이 담지 못한 것 / 김동수

등록 2021-04-26 16:30수정 2021-04-27 02:37

김동수ㅣ 기록노동자·<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2019년, 농협물류 평택센터에서 안성센터 소속 화물운송 노조원들이 목에 쇠사슬을 감아 연결한 채 앉아 있었다. 바로 앞에는 경찰들이 대치한 상태였다. 쇠사슬에 묶여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한 남성의 사진은 시선을 압도했다.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눈에 보이는 폭력 행위는 너무 강렬한 탓에 본질은 휘발되고 실체적 장면의 잔상만 뇌리에 꽂힌다. 상황은 연출될 수도 있다. 같은 장면이라도 성향이나 진영에 따라 다르게 투영한다. 이를테면 일부 보수·경제지는 노조원들을 ‘맥락 없이’ 부수고, 싸우고, 욕하는 이들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노출 빈도에 따라 그 이미지는 영영 지울 수 없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왜 저항하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다. 슬라보이 지제크는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폭력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하나의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이자, 사회적 폭력이 가진 근본형식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신비화”라고 말한다.

“재개발 과정에서 그 지역 임차인들이 중심이 돼서 ‘전철연’이라고 시민단체가 가세해 매우 폭력적인 형태의 저항이 있었다. 쇠구슬을 쏘면서 저항하고 건물을 점거하고 거기에 경찰이 진압하다 생긴 참사다.”

지난 3월31일, 용산참사에 대한 질의를 받은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답변은 의도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체 이야기의 맥락을 살피라고 했지만 그의 논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는 지금껏 가시적 폭력에만 국한시켜 용산참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쇠구슬과 같은 본질에서 벗어난 단어를 사용하며 임차인들의 폭력성을 강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제대로 된 철거민 이주대책 없이 강행한 뉴타운 정책의 폐해를 지우고 싶었던 걸까. 민간 주도로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징후적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된 그가 철거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2019년에 벌어진 쇠사슬 농성의 전말은 이렇다. 안성센터 소속 화물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조를 조직했다. 사측은 되레 노조원들에게 노조활동을 막는 확약서를 들이민다. 노조가 거부하자 매년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계약이 더는 갱신되지 않았다. 계약이 해지된 노조원들이 하루치 파업에 들어가자 사측은 법적 처벌을 시사했다. 이후 안성센터가 폐쇄됐다.

일련의 과정을 본다면 사측이 오히려 노조원들에게 폭력적 상황을 유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법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진공의 상태에서 어쩌면 예견된 투쟁 아니었을까. 비폭력이 숭고한 가치이긴 하지만 때로 그 신념은 위선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보이는 폭력을 벌인 이들은 죗값이라도 받지만 그것을 초래한 자들은 아무런 법적 조처도 받지 않는다. ‘철거민들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았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 ‘해고노동자들에게 용역계약 만료로 해고됐으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와 같은 ‘삶의 조언’들이 그들의 투쟁에 정당방위가 성립될 수 없게끔 만드는 보증서가 된다. 계약서에선 보이지 않는 그들의 처지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 괴리된 틈을 적극적으로 메워야 할 법과 정치는 오히려 방치한다. 이 상황이 반복됨으로써 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그사이 보이는 폭력의 장막에 둘러싸인 구조적 폭력은 묻힌다. 이 무대에 남는 건 결국 포기하지 않고 버틴 이들의 폭력적 행위뿐이다.

100일을 훌쩍 넘긴 엘지(LG)트윈타워 해고노동자들의 투쟁도 비슷한 양상이다.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찾아간 해고노동자들과 막아선 경찰들의 대치 사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해고노동자들은 도대체 왜 그곳에서 그래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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