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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모르핀 경제와 주거권의 질서

등록 2021-06-07 16:51수정 2021-06-08 02:05

‘부동산, 무엇이 문제인가’ 연쇄기고 _1

[왜냐면] 이원호ㅣ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해머 소리가 들릴 때 국민은 희망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 70년대 배경의 건설 액션 활극 대사와 같은 이 말은, 2008년 1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정례 회동에서 나눈 이야기다. 4대강 사업과 뉴타운 개발 등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든 그해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도래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에서는 뉴타운 개발 욕망을 부추기는 공약을 남발한 18대 총선 후보들이 ‘타운돌이’라는 별명과 함께 금배지를 달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건설의 해머 소리가 국민에게 희망의 소리로 들릴 것이라는 기대는, 한달 뒤 ‘용산참사’라는 비극의 곡소리로 돌아왔다. 거품이 떠받치던 부동산 욕망의 정점에서, 우리는 용산참사를 필연처럼 마주했다.

건설·토건 중심의 경제는 소위 ‘모르핀(마약) 경제’라고 한다. 토건 중심의 경제는 단기적인 경제성장 수치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역대 정권마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당면한 고통을 넘기려고 모르핀을 과도하게 처방하면, ‘중독’에 빠지고 파국이 도래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지속한 개발의 욕망은, 우리 모두를 부동산에 ‘중독’시켰다. ‘서민 주거안정’을 표방한 역대 부동산 정책들은, 모르핀과 같은 ‘주택공급론’을 만능처럼 반복해 주사하며 개발을 부추겼다. “낡은 집에서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말이 노후·저층 주거지 ‘주민’들의 목소리로 대표되며 개발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그 집에 살지 않는 다수의 외지 소유주들이 주민의 지위를 독점해 투기적 개발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을 통해 원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갖게 해주겠다며 부수고 짓기를 반복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연간 50만호 내외로 주택을 건설해 왔지만, 정작 세입자를 비롯한 주민들은 축출되어 개선된 주거환경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소유한 집에 거주하는 비율인 자가점유율은 1980년 58.6%에서 2019년 58.0%로 변동이 없다. 아무리 주택을 건설하고 빚내서 집 사라며 자가 소유를 촉진해도, 자가점유율은 60% 이하를 맴돌 뿐이다. 새로 건설된 아파트가 집 있는 다주택자들의 주택 수를 늘려주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공급된 주택의 불평등한 분배로 지난해 기준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은 약 6000채가 되었다. 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의 역사는 우리의 주거권이 빼앗겨온 역사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절규하던 용산참사의 비극으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저렴 주거를 없애고 원주민을 축출하는 개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1년 전까지도 집값 불안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던 정부도 분양아파트 중심의 공급 만능론으로 돌아섰다. 10여년 전 뉴타운 토건 시대의 인물까지 다시 서울시장으로 돌아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빠른 주택공급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수요·공급이라는 시장경제의 교과서적 원칙이 주택문제 해결의 해법이라며 수요를 맞출 공급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재 주택시장을 지배하는 수요는 투기적 가수요와 공포 수요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분양아파트 위주의 공급은 투기를 촉발하고 불평등을 가중할 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전환의 시대이다. 전환의 시대에 다시 과거로의 회귀와 반복을 택할 수는 없다. 우리의 노동과 권리가 땅과 건물을 독점한 이들의 불로소득으로 헌납당하는 질서를 바꿔야 한다. 모르핀 경제 효과만을 가져오는 부동산 경제와의 작별을 고하기 위해, 재테크와 투자로 포장된 토지와 주택 투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기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세입자 권리 강화로,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권’의 질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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