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여름의 문이 열리는 이맘때쯤 되면 나는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좋은 기억이 다수이지만 그중에서 유난히 남는 아쉬움이 하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바로 전교생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학여행이 취소된 것이었다. 간다고 해봤자 고작 하루 이틀이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취소의 이유 때문이다. 그 전해에 수학여행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다음해의 일정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 깨달았다. 어떤 한 가지 사건 하나로 인해 아예 전체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참으로 불합리한 일이지만 변화가 그런 식으로 일어날 수도 있음을 배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퍽 자주 발생한다. 특히 사고를 전후로 해서 확 바뀌는 일들이 빈번하다. 가령 필자도 참여했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군복무 대체 프로그램인 ‘국제협력봉사요원’ 제도가 그 예이다. 이는 스리랑카에서 자동차 분야로 활동을 하던 한 요원이 2012년 10월에 불의의 낙뢰 사고로 사망하면서 없어졌다.
이 사고로 후속처리 문제를 놓고 폐지 여론이 생겼고, 애초 외교부는 2014년부터 폐지하려고 했으나, 이미 파견된 요원들의 후속조치 등을 이유로 법안이 유예되었다가 2016년에 전격 폐지되었다. 해외의 오지에 파견되어 값진 봉사 활동을 하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유익한 제도가 사실상 사고 하나에 아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지극히 불연속적이고 일방적인 행정적 결정은 그 자체로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는 다른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무슨 일이 터져서 뭔가를 없애거나 중단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왜 같은 논리로 새로운 긍정적인 조치가 전격 시행되는 일은 없는가? 즉, 이왕 사회가 그런 식으로 돌아갈 거라면, 어떤 사건으로부터 뭔가를 배워서 완전히 새롭게 적용하는 일도 일어나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여기서 들고자 하는 사례는 바로 지난 9일 광주의 건물 붕괴 참사이다. 재건축 과정에서 건물이 붕괴하면서 정류장에 선 시내버스를 덮친 이 비극적인 사건은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물론,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본 사건에는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이 또 있다. 바로 사고 현장에 있던 가로수가 붕괴물이 떨어지는 걸 완충하는 구실을 한 점이다.
어른 한 명이 두 팔로 다 껴안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드리 백합나무 한 그루가 콘크리트 잔해물이 쏟아지는 것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함으로써 버스 전면부가 덜 손상된 것이다. 덕분에 버스 뒤쪽에 탄 9명은 모두 사망했지만 앞쪽에 탔던 8명은 중경상에 그칠 수 있었다. 결국 나무가 소중한 목숨을 여럿 구한 것이다.
지금까지 무자비하게 잘리는 가로수를 풍성하게 살리는 방향으로 관리 방식을 대폭 바꾸는 것을 충분히 정당화하고도 남을 일이다. 가로수는 공기 정화, 그늘 제공, 미세먼지 흡착, 산소 발생 등 수많은 다른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덧붙여 바로 이렇게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끊이지 않는 도심 건축 사고를 고려하면 가로수의 이런 기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로수의 가치를 인정하고 더더욱 가로수를 앙상하게 강전정하는 일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 불행한 사건에서 어떤 한 가지 새로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