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용기ㅣ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2일 대통령의 4대 그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대기업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 회동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한 기업인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 어린 감사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현대, 에스케이(SK)와 엘지(LG)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44조원의 대미 투자가,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4개 핵심부문(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공급망을 강화시켰다. 6월8일 바이든 행정부는 미 공급망 취약 요인과 개선 방향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했는데, 공급망의 개선 방향 중 하나는 동맹국·파트너와의 협력 강화였다. 4대 그룹의 대미 투자를 통해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파트너라는 것을 미국과 세계에 명확하게 천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의 군인용 백신 제공도 같은 맥락으로 이행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전에도 엘지에너지솔루션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간 영업 비밀 및 특허 침해 분쟁이 합의에 도달해 엘지뿐 아니라 에스케이의 대미 투자가 지속되게 된 것을 환영한 바 있다.
기업은 이렇게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를 통해 자국뿐 아니라 투자 유치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업은 또 누구를 얼마나 고용하고 지급할지에 대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기업의 고유한 결정은 한 나라의 투자와 고용, 다시 말하면 한 사회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는 경제성장과 일자리의 양과 질을 좌우하게 된다.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이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정부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업의 결정이 무한정 기업에 자유롭게 맡겨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자유는 국민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상충할 때 제한받게 된다. 생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야기할 때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일례다.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외부효과라고 하는데, 환경오염은 외부비경제효과라 하고, 연구개발(R&D)과 같이 투자 결과가 투자 주체뿐 아니라 사회 다른 구성원에게 끼치는 좋은 효과는 외부경제효과라 한다.
좋은 일자리의 부족은 지금 시대 가장 주목되는 외부비경제효과이다. 우울증과 자살, 가정의 파괴, 복지비용 증대를 야기할 뿐 아니라 양극화를 초래해 극단적인 정치 대립까지 양산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위험의 외주화 또한 결국은 기업이 초래한 심각한 외부비경제효과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본질도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한국 제조업의 경우 250인 이상 기업의 일자리가 업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치(40%)에 훨씬 못 미친다. 독일, 스웨덴과 같은 제조 강국은 그 비중이 50%에 이른다. 민간 일자리가 일자리의 해답이라고 많이 말하지만, 한국 민간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정부가 연구개발, 스케일업, 산업정책, 경쟁정책, 그리고 적절한 구매와 조달을 통해 기업에 일자리 친화적인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 민간의 일자리 창출력은 확대되기 어렵다.
마침 문 대통령도 참석한 영국 콘월 주요 7개국(G7) 회의를 앞두고 주요 7개국 재무장관 간 최저법인세율 15% 합의가 있었다. 미국의 빅테크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이전가격과 조세회피처를 활용한 법인세의 절세 혹은 탈루를 주요국이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유행 중인 기업의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중 사회(S)의 핵심은 일자리이고 근로조건이다.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사회를 만들면서 이에스지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