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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박성민과 공정감의 온도

등록 2021-06-28 14:45수정 2021-06-29 09:15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새 청년비서관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내정했다. 박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새 청년비서관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내정했다. 박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이다. 연합뉴스

이주현|정치부장

돌아보면 징후는 곳곳에 있었다.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이 몰고 온 ‘한반도 봄바람’에 감격해 대충 지나가긴 했지만, 여성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은 문재인 정부와 엠제트(MZ) 세대 균열이 표출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20대의 결정적 질문은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서 선수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단일팀을 구성해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하필 왜 여자아이스하키냐는 질문에 “메달권에 있지 않아서”라고 말했던 ‘어른들’로선, 남북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 중차대한 과업에 반발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엠제트 세대의 속내가 너무 궁금해진 때문이었을까. 이후 출판계는 한 해에만 수십종의 관련 서적을 쏟아내며 엠제트 세대 분석에 몰입했다. “역사상 가장 특별한 신세대”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화려한 정의와 함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 “‘헬리콥터 맘’의 채근 속에 ‘숙제기계’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포르노에 노출됐음에도 실제로는 부모 세대보다 성관계 빈도가 낮은 존재들”이라는 연민에 찬 분석이 쏟아졌다. 평창올림픽 이듬해 여름, 문재인 대통령은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했고, 또 이듬해엔 청년비서관직(1급)을 신설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마음은 점점 멀어져갔고 올해 4월 보궐선거에선 여권에 돌아선 표심이 분명하게 확인됐다. 고민에 빠진 청와대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박성민 청년비서관 임명이었다.

하지만 이는 곧 또다른 논란을 낳았다. 반발하는 쪽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1) 또 여자인가 2) 취준생들의 박탈감을 외면하는 처사 아닌가 3) 박성민이 1급에 임명될 자격이 있는가. 꼰대라는 비난을 감수한다면, 반박은 그리 어렵지 않다. 1) 왜 여자면 안 되나? 성별 관계없이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게 ‘공정’ 아닌가? 2) 청년비서관은 시험 쳐서 들어가 정년을 보장받는 자리가 아니다. 공시 준비생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다. 솔직히 박탈감 아니라 질투 아닌가? 3) 할 말 정말 많다. 박성민이 청년 대변인이 된 건 더불어민주당의 공개오디션을 통과해서다. 오디션 동영상이 게시된 지 1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조회수가 1만이 안 되는 걸 보면 이 행사 자체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동시접속자가 2만명 몰린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16강전에 비해 초라한 조회수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시험’을 거쳐 대변인이 됐고, 이낙연 당시 대표에 의해 청년최고위원으로 발탁됐다. ‘0선 1996년생’이라 스피커는 크지 않았지만, 박성민은 친문 일색이었던 당 지도부에서 ‘불편한 목소리’를 자임했다. ‘30대 부동산 영끌 안타깝다’(김현미) ‘카투사 아들의 휴가는 법적 문제 없다’(추미애) 같은 발언에 대해 친구들이 느끼는 ‘감정’을 진솔하게 전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할 말 많음’은 펄펄 끓는 ‘박탈감’ 앞에서 쪼그라든다. 2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살고 있는 내 주장은 ‘사치스러운 관대함’으로 느껴질 터이다. <k-를 생각한다>를 쓴 임명묵은 “공정성을 정서적 문제로 바라보자”고 말한다. 90년대생은 격렬한 경쟁에 참여한 상층이나 경쟁에서 탈락한 하층이나 계층을 가리지 않고 깊은 정서적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객관적 조건보다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주관적 인식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90년대생 사이에서 공정은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즉 공정감의 문제”가 된다.

최대 임기가 9개월에 불과한 청년비서관에게 대규모 예산을 들여 새로운 정책을 기획·집행하는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나는 앞으로 그의 역할은 또래의 공정감, 그 감각의 온도를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에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2년 전 청년대변인 오디션에서 “함부로 언행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초심을 지키는 한, 그는 민주당 ‘어른’들과 다를 것이다. 최소한, 불편한 질문이라는 이유로 젊은 기자를 향해 “후레자식”이라 모욕하고, “60~70년대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교육 때문에 20대가 보수화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감각과는 다를 것이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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