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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과학에도 비평이 필요한가

등록 2021-07-01 15:50수정 2021-07-02 02:35

방역을 위해 누구를 어떻게 추적하고 격리할 것인지, 어떤 공간과 업종을 얼마나 통제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세심하게 결합한 과학이 필요했다. 코로나19 시대의 과학비평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과학 언저리] 전치형ㅣ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지난 28일 ‘과학비평’을 주제로 삼아 열린 과학문화 포럼에 참석했다. 지금까지 과학문화 관련 행사를 많이 보았지만 ‘과학비평’에 대해 본격적으로 토론하는 자리는 처음이었다. ‘과학 비평지’를 지향하는 잡지를 5년째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왜 과학비평에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했다. 과학비평이라는 낯선 활동이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고 향유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과학에도 비평이 필요한가. 누가 과학을 비평할 수 있는가.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강양구 <티비에스>(TBS) 과학전문기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영화비평이나 문학비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영화와 문학을 철학, 심리학, 과학 등 다양한 관점으로 읽어내는 비평을 환영하지만, 과학비평이라고 하면 왠지 어색하게 느끼고 박사 학위가 있는 과학자만 과학을 비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달리 과학은 참과 거짓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영역이므로 전문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과학에 대해 논평하다가 자칫 잘못된 정보를 퍼트릴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나 문학 비평의 시선이 발표된 작품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과학비평은 출판된 논문의 내용을 해설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강 기자는 2014년에 쓴 ‘누가 과학비평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과학비평의 역할 중 하나로 “과학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고, 또 당대의 과학지식을 둘러싼 열띤 논쟁을 대중 앞에 활짝 펼쳐 보이는 것”을 꼽았다. 역사 속에서 또 현재 사회의 맥락 속에서 과학의 의미와 역할을 찾는 작업이 과학비평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역사와 사회에 맞닿는 지점을 살피는 일은 과학자와 비과학자가 함께 참여할 때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과학과 사회를 비평적으로 연결해서 보아야 하는 필요를 일깨워주었다. 방역이든 백신이든 그동안 코로나19와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또 방역과 백신은 과학의 문제이니 정치적 고려와 계산을 배제하라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그러나 방역을 위해 누구를 어떻게 추적하고 격리할 것인지, 어떤 공간과 업종을 얼마나 통제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세심하게 결합한 과학이 필요했다. 백신을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접종할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과학적 사실과 행정적 역량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가능한 정치적 행위였다. 코로나19 시대의 과학비평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깊이 있는 과학비평은 사회비평의 역할도 할 수 있다. 감염병과 백신에 대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적용되고, 때로는 거부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 사회가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 사회적 자원과 관심이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6월에 퓰리처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잡지 <애틀랜틱> 소속 과학 저널리스트 에드 용의 코로나19 연속 보도가 바로 그런 사례다. 그는 바이러스와 백신과 과학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면서 미국이 왜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했는지 자세하게 진단했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용의 과학 기사가 “질병의 진행을 예측하고, 미국이 당면한 복잡한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미국 정부의 실패를 밝혀내고, 감염병이 유발하는 과학적, 인간적 난제들의 맥락을 선명하고 알기 쉽게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과학과 역사와 사회를 잇는 비평적 시선을 통해서만 작성할 수 있는 기사였다.

그 어느 때보다 과학의 힘과 효용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지금, 과학비평의 가치는 과학자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달하고 해설하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롭고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린 전문가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이해하고, 더 나아가 전문가들 사이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모색하는 작업이다. 이는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활동의 과정, 맥락, 결과를 고루 살피고 토론할 때 가능한 일이다. 과학비평은 지난 일년 반 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비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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