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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교육부, 기가 차다

등록 2021-07-04 17:09수정 2021-07-05 09:43

기고

홍민정|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변호사

기가 차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쓰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교육부의 행보에 기가 찬다. 최근 교육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성취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금지 대상 차별의 범위에서 출신학교를 포함한 학력을 삭제하자는 의견을 덧붙였다.

교육부의 의견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는 수많은 데이터가 입증한다. 2020년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국회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 신청 현황을 살펴보았다. 서울대 학부모의 고소득층(8·9·10분위) 비율은 무려 62.6%에 달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14∼2016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을 토대로 고소득층(9·10분위) 비율과 국가장학금 미신청자 비율을 반영해 분석한 결과, 상위권 6개 대학의 고소득층 학생 비중이 70% 안팎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이 통계는 학력과 출신학교가 오롯이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취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많은 전문가들 또한 출신학교와 학력은 인재 채용 및 선발의 합리적 기준이라 할 수 없음을 입을 모아 역설한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존 헌터 교수는 ‘인사심리학의 선발방식에 따른 타당성과 유용성’이라는 논문에서 학벌 좋은 사람이 일 잘할 확률은 20% 미만이라고 밝혔다. 구글 전 인사담당 부사장 라즐로 복은 학벌이나 자격증은 업무능력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인권의 전반을 다루는 법률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일관되게 학력이나 출신학교가 업무능력과 관련이 깊다는 객관적인 기준이나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사회적 합의도 있었다. 헌법, 고용정책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이미 합리적 이유 없는 학력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정책기본법에 모집·채용 시 ‘학력’ 차별 금지 사유를 추가하는 것에 대해 ‘개인의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취업 시장의 관행, 이 때문에 구직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학력에 집착하고 취업 초기 단계부터 원천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하여 불필요한 경력 쌓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상황, 학력지상주의 풍토에 기인한 학력 간 지나친 임금 격차와 고학력 실업의 부작용, 학력 인플레에 따른 인력수급 불균형 등의 문제와 이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였을 때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학력은 이미 우리 사회가 차별의 핵심적 요소로 인정하였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그 금지를 분명히 법률로 정해놓은 사항이다. 한데 교육부가 이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의견을 공적으로 내놓았다.

교육부의 검토의견을 납득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미 교육부가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의 가치에 동의하여 출신학교 블라인드 입시와 채용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2020년 감사를 통해 일부 사립대 의료원의 출신학교 등급제 적용을 적발했다. 감사결정문에서는 “대학입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학 입학성적과 서열을 순위표로 작성하여 채용에 활용하는 것은 지원자의 역량이나 능력과 무관하고, 합리적인 이유나 근거가 매우 미약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고교 유형 및 출신고교의 후광효과를 바로잡기 위해 2021학년도에는 블라인드 입시를 시행하였다. 그럼에도 국회에 학력 차별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의견을 피력한 것은 자기모순이며 심히 우려스러운 자가당착이다.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가장 주된 원인 1위는 학벌 중심 사회구조이다. 2017년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국민 81.5%는 입시와 고용에서 학력과 출신학교 차별을 막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학력 차별과 무의미한 입시경쟁으로 고통받는 학생, 학부모, 청년, 시민들의 호소를 부디 경청하길 바란다. 상황이 이러한데 차별금지 항목에서 학력을 빼라는 교육부에 기가 찰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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