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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통기한이든 소비기한이든

등록 2021-07-08 17:02수정 2021-07-09 02:35

[기고]
하지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최근 식약처가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7월에 발의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를 통과하면서 소비기한 논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 1985년에 유통기한 표시제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유통기한 날짜를 표시하고 있는데, 유통기한은 생산자나 유통업자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식품이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기한에 0.7~0.8 정도의 안전계수를 곱해 유통기한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서, 2019년 기준 음식물쓰레기의 약 60% 정도가 신선한데도 버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품질유지기한(best before date)과 소비기한(use by date) 표시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품질유지기한은 장기간 보관해도 부패, 변질 등 품질변화 우려가 적은 제품들을 적절한 보존방법으로 보관하였을 때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개념인 소비기한은 말 그대로 소비해도 되는 기한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한 소비기한의 정의는 “‘규정된 보관조건에서’ 식품을 섭취하여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최종기한으로, 해당 날짜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품질 수준을 갖지 못하는 기한”을 의미한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에 비해 소비자가 언제까지 해당 제품을 소비해도 되는지를 더 직접적으로 제시해주지만, 관리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이 있다 보니 도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다시 말해, 동일한 방식으로 제조된 제품이라고 할지라도 유통과정, 보관 방법, 판매 환경,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어떻게 제품을 보관하는가에 따라서 제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이 달라진다.

현재 낙농업계에서는 특히 유제품류의 변질 가능성이 높고, 유통과정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소비기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고 탈이 난 경험이 있는데, 소비기한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거나 반대로 언제까지 마실 수 있는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되어 기대된다는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표기하는 것이 가장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법만 통과시킬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산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 표기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며, 관련 개념들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 혼란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유통기한이든 소비기한이든 이들을 병행표기하든 어떠한 방식으로 시행되더라도 해당 기한 내에 제품이 변질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 분쟁과 제품 안전에 대한 소비자 불신 등의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끝으로 소비기한에 관한 논의에서 외국 사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냉장이나 유통 환경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외국 사례를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나라 실정과 제품의 특성에 맞게 대상 품목과 기준을 설정하고, 제품 변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냉장·유통과정 관리체계를 점검하고 마련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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