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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용산공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등록 2021-07-09 13:27수정 2021-07-10 13:11

용산공원 기본설계(안) 조감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제공
용산공원 기본설계(안) 조감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제공

[크리틱] 배정한 ㅣ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서울 용산공원을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일본군과 미군이 120년 가까이 점유해온 불운한 땅, 100만평 금단의 땅을 공원으로 치유해 미래 세대에게 선물한다는 오랜 계획이 도전받고 있다. 이 서울 한복판 노른자 땅에 아파트를 짓자는, 30년 넘게 반복되어온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박현주 회장(미래에셋그룹)은 “주택 공급이라는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산에 공원을 조성할 게 아니라 15~20평 아파트를 짓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경민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는 기지의 10%만 300% 용적률로 개발하면 30평대 아파트 8천가구를 공급할 수 있으며, 임대아파트와 중산층 아파트는 물론 최고급 펜트하우스를 함께 지어 향후 용산공원의 운영비를 조달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정치권도 들썩였다. 5월 초,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최고위원은 용산 반환 부지에 “희망의 집을 짓자”고 제안했다. 부지 ‘절반만’ 활용하면 분당 신도시보다 많은 9만가구 규모의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해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5월 말에는 여당 대선 주자 이광재 의원이 가세했다. 그는 ‘집 걱정 없는 대한민국, 용산에서 시작합니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어 용산공원을 “경의선 숲길처럼 선형 공원으로” 축소하고 “미래형 주거 환경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이 토론회에서 강 최고위원은 부지 20%를 용적률 1000%로 고밀 개발하면 “무주택 서민에게 튼튼한 주거 사다리를 제공”할 수 있고 “직주 근접과 탄소 중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아파트 공급론들의 논리는 대체로 두가지다. 첫째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다. 13개에 이르는 역으로 둘러싸인 교통 요지이자 여의도 면적보다 큰 서울 중심부의 국유지에 주택을 공급하면 미친 듯 폭등하는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다. 기지 이전이 완료되고 토양과 지하수 오염 정화를 마친 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른 반환 절차가 끝나는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빨라야 2030년대 초반에나 공원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땅에 언제 어떻게 아파트를 가득 채워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근시안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다.

또 다른 논리는 엉뚱하게도 사회적 형평성이다. 국가 공원인 용산공원 조성은 전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이익과 혜택은 결국 공원 주변의 최고급 초고층 아파트 주민들에게 돌아가므로 공원 부지 일부에라도 임대주택을 지어야 사회적으로 공평하다는 논리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어설픈 포퓰리즘 정책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는 30년간의 다각적 계획과 지난한 토론을 통해 이미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동의의 강을 건넜다. 주택 공급 주장은 근현대사의 질곡 끝에 돌려받은 소중한 땅을 한순간에 부동산 논리와 자본의 힘에 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넓고 크고 비어 있는 만큼 이 땅의 운명은 여전히 불안하다. 용산공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공원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낭만의 초록빛 별천지가 아니다.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제는 왜곡된 도시 구조를 교정하는 일이자, 빗장 풀린 미지의 땅을 여백으로 남겨 미래 세대에게 양보하는 일이다. 용산공원의 완성은 성숙한 공간 정치와 건강한 도시 문화를 가늠할 지표다. 더 많은 소통과 참여의 장을 마련해 공원 계획안을 다듬고 공원 주변부의 무분별한 개발을 경계하면서 기지 반환과 공원 조성 사이의 공백기를 채워가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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