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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해진의 세계+] ‘고수레’를 하는 마음

등록 2021-07-11 16:10수정 2021-07-12 02:36

조해진 소설가

주로 사막이나 초원 지역에서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을 찾아 떠도는 유목민(노마드), 현대에 와서 이 ‘노마드’란 단어는 고정관념과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 혹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으로 공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데 쓰이곤 한다.

최근 개봉한 미국 영화 <노매드랜드>(클로이 자오 감독)에서는 경제위기, 특히 2007년에 촉발되어 2009년까지 이어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직장과 가족, 고향과 집을 잃고 밴이나 트레일러, 캠핑용 픽업트럭 같은 ‘움직이는 부동산’에서 지내며 저임금의 단기 노동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 새로운 개념의 유목민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홈리스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 ‘펀’이 친구의 딸이자 과거의 제자에게(펀은 한때 임시 교사였다) 자신은 홈리스가 아니라 단지 집이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올뿐더러, 영화의 원작이 된 제시카 브루더의 동명의 책(<노마드랜드>)에도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이 노마드(노매드)들은 그 사고방식이나 외양이 중산층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하긴, 수시로 빨래방에 가서 옷을 세탁하고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하여 샤워를 하는 홈리스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매드랜드>는 자발적으로 고정된 집을 거부한 사람들의 구도와도 같은 삶을 다룬 영화일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펀’뿐 아니라 펀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노마드들은 충분히 외롭고 고단하다. 나방이 창문에 가득 붙은 공중화장실에서 아무런 미적 고려 없이 머리칼을 싹둑싹둑 자른다든지, 난방이 안 되는 차 안에서 새벽 내내 자신의 입김을 보며 잠을 설치는 펀의 모습은 일반적인 홈리스들의 현실과 아주 멀어 보이지는 않았다. <노매드랜드>가 홈리스의 현실과 다른 무언가를 담았다면, 그건 제 몸 하나는 가꿀 수 있고 이동과 잠자리를 해결해주는 큰 차를 소유했다는 조금 나은 조건이 아니라 선뜻 다른 이에게 커피나 샌드위치, 담배를 나눠주는 연대의 순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0여년 전 폴란드에서 1년 가까이 한국어 선생으로 지내던 때, 어느 날 이르게 잠에서 깨어 동틀 무렵 강사용 기숙사를 나서니 쓰레기통 밖에 걸어놓은 비닐봉지를 수거해 가는 나이 든 노숙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폴란드 사람들이 빵만큼은 깨끗한 봉지에 따로 담아 버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훗날 조경란의 단편소설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일요일의 철학>, 창비)의 한 장면을 읽으며 나는 폴란드에서 목격했던 그날의 풍경을 떠올렸는데, 일본의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는 한국인 남자 ‘진교씨’가 유부가 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수레하듯 식당 밖으로 음식의 일부를 미리 던져놓는 장면에서다. 고수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내어 “고수레” 하고 외친 뒤 허공에 던지는 주술적 행위인데, 그 기원 설화를 보면 생전에 외롭고 배고팠던 사람들이 그 고수레를 받는 귀신으로 등장하곤 한다.

하반기에는 백신 접종이 마무리되어 코로나의 그늘에서 차근차근 벗어나게 될 거라고 우리는 기대했지만, 바이러스는 그 기대를 비웃듯 다시 창궐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강화됐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팬데믹 시대의 우리는 언제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상이 무너질 위험을 안고 산다는 점에서, 또한 집이든 일자리든 보장된 것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마드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비록 대기는 어둡고 바람은 차도 전등 하나를 들고 노마드들의 땅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영화 속 ‘펀’의 얼굴이, 언제라도 자기 몫의 무언가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고독하면서도 품위 있는 그 미소가 계속해서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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