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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어느 탈북자가 말하는 미국

등록 2021-07-11 17:27수정 2021-07-12 02:36

[세계의 창]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해머던지기 선수 궨 베리는 최근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미국 국가 연주 때 국기에 등을 돌리고 ‘행동하는 운동선수’라고 쓴 셔츠를 든 채로 시위했다. 그녀의 행동은 즉시 정치적 우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우익 정치인과 비판자들은 그를 비애국적이라고 하며 올림픽 대표팀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했다.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을 그토록 부끄러워한다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경쟁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국기와 국가에 반대하는 시위에 보수가 분노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 2016년 시즌에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자 보수 진영은 거세게 비판했다.

베리와 캐퍼닉은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이다. 한 차원에서, 그들은 국가로 대표되는 미국의 인종 불평등의 역사에 항의하고 있다. 미 국가 ‘성조기’(Star-Spangled Banner)는 한때 흑인을 “별개의 열등한 인종”이라고 선언했던 프랜시스 스콧 키가 가사를 썼다. 여기에는 1812년 전쟁에서 영국 편에서 싸운 자유 흑인 노예를 비판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또 다른 차원에서, 베리와 캐퍼닉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고 있다.

운동선수들의 시위를 비판하는 이들은 대부분 공화당과 우익 언론을 지배하는 백인 남성, 여성이다. 하지만 한 목소리는 정말 뜻밖이었다. 탈북자 박연미씨 얘기다. 박씨는 북한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어머니와 함께 탈북한 인권운동가다. 그는 북한을 떠나 미국에 이르는 비참한 경험을 설명한 책과 연설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미국 우익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베리의 시위 뒤 박씨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베리가 북한 사람이었다면, 지금 똑같은 짓을 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이 8대에 걸쳐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처형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베리가 가장 관대한 이 나라를 불평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논리대로면, 미국의 여건이 북한보다 좋기 때문에 아무도 미국에서 어떤 것에도 항의해선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다. 평화적으로 시위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베리와 동료들은 그 점을 입증하고 있다. 이 나라는 평화적인 시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평화적 시위 ‘덕분에’ 큰 발전을 이뤘다. 민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성소수자(LGBTQ)운동, 이 모든 시위가 미국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

베리의 시위에 대한 반응이 보여주듯 미국은 특별히 관대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의의 역사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더 관용적인 국가가 됐다. 그것은 박씨가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다.

박씨의 말에는 또 다른 함의가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고통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보다 덜하거나 덜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은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많은 북한인과 탈북자의 고통은 정말 끔찍하다.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겪는 것도 끔찍하다. 그러나 그들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들은 각자의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박씨가 미국 우익의 대변자가 됐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폭스뉴스>는 박씨의 견해를 보여주는 걸 즐긴다. 한 프로그램에서 박씨는 컬럼비아대학에서 했던 학업을 북한에서 경험한 세뇌와 비교해 미국의 미래가 “북한만큼 암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박씨는 세뇌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 우익의 프로파간다를 더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베리의 시위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폭스뉴스>와 공화당의 국가주의와 편협함이 어떻게 미국을 그가 그토록 경멸하는 북한의 현실에 가깝게 밀어붙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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