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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불법파견’ 노동이 존중받는 방식

등록 2021-07-12 18:19수정 2021-07-13 10:12

전종휘 ㅣ 사회에디터

서른네살 ㄱ씨는 2016년부터 경기 고양시 덕양구청에서 노점상 단속 업무를 했다. 민원이 들어오면 덕양구청 담당 공무원이 직접 전화를 하거나 ㄱ씨와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 7명이 들어간 단체카톡방에 문자로 업무 지시를 했다. 그러면 이들은 노점상을 찾아가 도로법에 의해 노점 물건을 회수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설명한 뒤 노점 좌판에 계고장을 붙이고 경찰과 함께 물건을 치우기도 했다. 도로에 누군가 불법 적치물을 가져다 놓으면 치우는 것도 이들의 업무였다. 누군가는 그들이 구청 공무원인 줄 안다.

하지만 이들은 고양시와 도급계약을 맺는 용역업체 소속이다.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업체만 1년마다 계속 바뀌었다. 얼마 전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은 고양시에 이들 7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지시했다. 당사자들이 불법파견을 확인해달라는 진정을 낸 데 대한 대답이다. 민법상 도급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가 책임을 지고 어느 일을 완성한 뒤 그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들처럼 원청에 해당하는 덕양구청 공무원이 직접 업무를 지휘하고 감독한 것은 파견 노동이다. 노점 단속 업무는 파견법이 허용한 대상 업무도 아니고, 용역업체가 파견법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업체도 아니니 이들의 경우 불법파견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노동청 판단이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이 드러나면 원청이 즉시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고양시는 공무원도 아니라 공무직으로 고용하라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올해까진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하고 내년부터는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으로 계약하겠다는 게 고양시가 내놓은 해결책이다. 공무원 임용령엔 해당 고용의 형태를 ‘한시적 업무’에 쓴다고 돼 있다. 이들의 고용은 앞으로도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셈이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노동 존중 도시’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걸었는데도 상황이 이렇다.

불법파견이 지방자치단체에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과 유사한 업무가 다른 지자체에 없을 리 없다. 실제로 강원도 쪽 지자체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황을 물어왔다고 한다.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전반적인 근로감독이 필요한 대목이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을 저지른 사용자한테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법이 잘못된 고용을 이유로 이토록 강하게 처벌하는 조항을 둔 건 파견 자체가 ‘중간착취’ 제도이기 때문이다. 입법권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9조)고 명토 박아 놓았다. 그 예외를 열어둔 게 파견법인데, 이 법을 어긴 건 그 죄가 작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동 존중 사회’를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때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 판정 시 즉시 직접고용 제도화”를 약속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양시 노점 단속 노동자들의 경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듯, 파견법은 여전히 사용자가 해당 노동자를 단기 계약직이건 시간제건 직접고용하기만 하면 그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다. 별다른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300여명의 고속도로 톨게이트 징수 업무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고용 판결문을 받아 들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가운데 관련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는데도 도로공사는 끝내 5천여명을 직접고용하는 대신 자회사에 보내 고속도로 쓰레기 줍는 일을 시켰다. 톨게이트 하이패스 차로 확대로 장차 관련 업무가 대폭 줄어든다는 명목이었으나, 공공기관장이 징역 3년에 처해질 수도 있는 불법파견을 일삼은 죄는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들이 정권이 바뀔 때면 ‘공공기관 방만 경영과 비대화’로 낙인찍혀 사라지기 쉬운 자회사로 보내졌다. 최근 불법파견 선고를 잇달아 받은 현대제철이 자회사를 세워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고용하겠다고 나선 것도 정부가 노동을 존중하는 방식을 따라 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용자가 중간착취를 두려워하겠는가.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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