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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칼럼] ‘방역 협조’ 우선이나, ‘방역 실패’ 책임 물어야

등록 2021-07-12 18:41수정 2021-07-13 02:37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또다시 국민들께 조금 더 참고 견뎌내자고 당부드리게 돼 대단히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이번 같은 결정적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방역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방역 컨트롤타워도 재정비해야 한다. 방역 대책이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수립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종로구청 도시디자인과 광고물정비팀 직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의 폐업한 식당의 간판을 철거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폐업·이전하는 업소가 늘어나자, 방치된 간판들을 무상으로 철거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종로구청 도시디자인과 광고물정비팀 직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의 폐업한 식당의 간판을 철거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폐업·이전하는 업소가 늘어나자, 방치된 간판들을 무상으로 철거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오늘부터 수도권에서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됐다. 지난해 1월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래 최고 단계의 거리두기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됐다. 무엇보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피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결정타를 맞게 된 자영업자들의 충격과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국민들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 더이상의 감염 확산을 막아내 4단계 거리두기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방역 전문가들은 모임과 외출을 가능한 한 자제하면서 일반 국민 대상의 백신 접종이 차질 없이 이뤄지면 1~2주 뒤부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의 협조가 난국을 돌파할 유일한 길이다.

이번 4차 유행의 직접적 원인은 코로나19보다 전파력이 2.5배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코로나19 국제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 집계를 보면, 전세계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4월 말 9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6월 한때 3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가 최근 다시 50만명 선에 육박했다. 주요 국가들이 다시 방역의 끈을 조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마스크를 벗었던 이스라엘이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했고, 방역 모범국으로 불린 오스트레일리아는 오후 5시부터 3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일본은 네번째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도쿄올림픽을 무관중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런 점에서 4차 유행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하고 역주행을 한 정부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 5월26일 ‘예방접종 완료자 일상회복 지원방안’을 내놨다. 백신 1차 접종자에 대한 모임 제한 완화, 7월부터 실외 ‘노 마스크’와 완화된 거리두기 체계 시행 등을 예고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에도 백신 접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도록 권장했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려는 의도였지만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전달했다. 게다가 당시는 국내에서도 울산을 중심으로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때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 방침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감염내과)는 6월13일 페이스북에 “9월 이후에나 가능한 일들이 7월로 당겨지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며 “1년6개월도 참았는데 2~3개월 조금만 더 신중하고 차분하게 정책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썼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흘려들었다. 6월20일 새로운 거리두기 체계 개편안 발표를 강행했다. 7월부터 사적 모임 인원을 4명 이하에서 8명 이하로 늘리고 식당과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밤 12시까지로 연장한다고 했다.

게다가 7월은 백신 공급의 공백이 예상되는 시기였다. 하루 최대 100만명까지 이르렀던 백신 접종이 6월 하순부터 수만명대로 떨어졌다. 59살 이하의 접종이 시작되는 7월 말까지 백신 공급이 불확실하다는 걸 정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방역의 끈을 늦추는 게 아니라 조여야 했던 시점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지난 10일 <한국방송>(KBS) ‘뉴스 9’에 출연해 “생활방역위원회라든지 여러 회의를 통해서 국민 피로감하고 서민경제에 대한 악영향 때문에 거리두기 완화를 해야 한다, 이런 의견이 우세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이 안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이 무시되고 있다는 얘기다.

방역과 경제를 모두 챙겨야 하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결정은 냉정한 판단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의욕만 앞서다 보니 방역도 경제도 모두 놓치는 최악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김부겸 국무총리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또다시 국민들께 조금 더 참고 견뎌내자고 당부드리게 돼 대단히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이번과 같은 결정적 시행착오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방역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 왜 반복해서 나왔는지 경과를 철저히 따지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반복해서 고통 감수를 요구받는 국민에 대한 도리다. 방역 컨트롤타워도 새로 세워야 한다. 방역 대책이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수립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국민의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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