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순옥적 허용’.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일, 현실에선 일어나기 힘든 무리한 설정을 뜻하는 신조어다. 죽었던 인물이 되살아나는 건 기본이다. 자극적 소재, 작위적 전개,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 등으로 비판받지만 보는 사람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꽤 있다. 한국 드라마에 ‘순옥적 허용’이 있다면 한국 언론에는 ‘포털적 허용’이 있다. 언론사들은 지면에는 싣지 않을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기사, 취재와 사실 확인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이 실종된 기사를 포털로 송고해 유통시킨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글이 유일한 취재원인 건 기본이다. 웬만한 일은 ‘단독’ ‘특종’ ‘논란’이 된다. 조회수를 향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공들여 쓴 슴슴한 기사보다 ‘매운맛’ ‘사이다’ ‘해장국’ 기사에 박수를 보내니 언론사만 탓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실시간 검색어 폐지 이후 두드러진 포털적 허용의 양상은 정체불명 국제뉴스의 증가다. 포털 다음 뉴스에서 사람들이 많이 읽은 국제뉴스 20개 중 17건은 가십성이었고 17건 중 지면에 실린 건 단 한건뿐이었다(<질문하는 기자들 Q> 7월4일 방송). 대표적 사례는 ‘인육케밥’ 오보다. 가나에서 8년 동안 인육케밥을 만들어 팔아 150억원을 번 사람이 체포됐다는 거였는데, 난생처음 들어본 해외 언론이 출처인 황당무계한 얘기를 인용 보도하며 최소한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한경닷컴이 최초 보도했고, 다른 언론들도 받아썼다.
물량 공세도 두드러진다. 일례로, 국내 언론사 중 디지털 혁신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현재 네이버 언론사 채널 구독자수 1위인 <중앙일보>를 보자. 필자는 네이버 뉴스 검색 기능을 이용해 지난 3개월 동안 <중앙일보>가 고 손정민씨를 언급한 기사(칼럼 포함)를 몇건 보도했는지 알아봤다. 총 184개인데, 이 중 지면 기사는 15개였다. 지면에는 싣지 않고 포털에만 송고한 기사가 169개였다는 얘기다. 같은 언론사가 같은 사건에 대해 지면 기사의 11배가 넘는 분량의 포털 기사를 쏟아낸 거다. 디지털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선뜻 납득되지 않는 큰 차이다. 포털 기사의 대다수는 유족의 입장, 온라인에서 제기된 의혹 등을 그대로 옮기는 내용이었다.
포털에 송고할 수 있는 기사 개수엔 제한이 없지만 포털 기사를 생산하는 인력과 시간엔 당연히 한계가 있다. 결국 불량품이 나오고 큰 피해를 입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딸을 모욕한 삽화 기사가 대표 사례다. 조선닷컴의 디지털 제작 체계에서 나온 단순 실수라는 게 <조선일보>의 해명이다. 기사를 쓴 기자가 직접 아무 사진이나 삽화를 골라 넣은 뒤 어떠한 점검이나 관리감독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홀로 온라인 기사를 출고하고, 이후 잘못을 발견하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알아서 대충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는 거였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조선일보>는 포털 기사에서는 저널리즘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실토한 셈이다.
포털적 허용의 최고봉은 지난주 수면 위로 떠오른 <연합뉴스> 사례다. 매년 300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는 국가 기간통신사이자 뉴스 도매상인 이 언론사는 약 2년 동안 홍보대행사 직원이 보내온 보도자료 2천여개를 <연합뉴스> 소속 기자가 쓴 기사로 포장해 포털에 전송해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언론사들은 포털 뉴스 이용자가 가장 많이 읽는 기사의 상당량을 제공하는 곳들이다.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네이버의 ‘많이 본 뉴스’에 올라간 기사 총 5만2740개(2020년 1월부터 10월 중순까지 매일 6개 주제 분야, 각 분야 1~30위 기사)를 수집·분석해보니, 전체의 40%가량이 상위 3개 언론사 기사였고 전체의 약 70%는 상위 10개 언론사가 공급한 기사였다. 이 조사에서 기사 점유율 1~4위인 언론사가 <중앙일보> <조선일보> <연합뉴스> <한국경제>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시즌3이 방송 중이다. 그런데 ‘아무리 순옥적 허용이라지만 도가 지나치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비판을 의식한 작가는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적 허용이 도를 넘고 있다, 공론장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포털 뉴스 점유율 상위 언론사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