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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숲 태우면 가산점?

등록 2021-07-18 20:32수정 2021-07-27 11:34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같은 행동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의 미소는 아름답지만, 심각한 얘기를 하거나 혼나고 있는 와중에 올라간 입꼬리는 사람을 격분하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벌어지는 일일수록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더욱 중요하다.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고위공무원이 휴가를 가면 눈총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며 산다.

사진 한 장이 이를 잘 포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7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대형 산불이 난 상황에서도 화염을 배경으로 태연하게 골프를 치고 있던 사람들의 광경이 그러했다. 거의 지구 멸망 같은 상황인데 어떻게 그대로 게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눈앞에 닥친 기후위기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무대응에 대한 시각적 상징이 되었던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맥락은? 지구촌에선 온갖 일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 가지가 압도적으로 두드러진다.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 자체도 문제이다. 며칠 전 캐나다의 기온이 무려 섭씨 49.6도. 바깥 온도가 목욕탕 열탕보다 뜨거운 세상에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700명 이상이 급사하고 해변의 조개가 그 상태에서 구워졌다는 것. 이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엄청나고, 중요한 사실이자 맥락은 없다.

그것이 맥락이라면 그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목할 만한 일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인가? 바로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REC) 가중치 개정안이다.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어려운 말을 걷어내고 나면 골자는 이렇다. 탄소배출이 높은 화석연료로부터 탈피해야 하므로 그렇지 않은 다른 에너지원이 더 많이 사용되도록 그만큼 더 ‘높이 쳐주는’ 정책이다. 얼마나 좋은가? 그러게 말이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이어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했을 것이다. 이 정책이 가장 우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무 태우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라는 이름이 그 주인공이다. 이상한 이름에 주눅 들지 말자. 바이오매스는 말 그대로 ‘생명의 물질’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목재를 가리킨다. 나무를 벨 때 원목 규격에 못 미치거나 너무 자잘해서 수집이 어려운 목재를 부르는 긴 이름일 뿐이다. 한마디로 벌채 부산물인 것이다.

쓸데 마땅치 않은 부산물 태우는 거니 좋지 않으냐고? 충격적인 사실은 부산물이 사실 주산물이라는 것이다. 숲을 벌채해서 나오는 원목으로 쓸 만한 목재, 즉 제재목 활용 비율은 고작 12.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목재 생산할 때 톱밥이 좀 나오는 게 아니라, 톱밥을 잔뜩 생산할 때 목재가 좀 나오는 격이다. 이것을 더욱더 많이 쓰시라고, 즉 숲을 홀라당 태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라면서 산업부는 이에 가중치를 2.0씩이나 수여하고 있다.

아무리 강조하고 장려해도 모자라는 건물의 태양광 가중치는 기존의 1.5에서 1.2~1.4로 오히려 떨어뜨린 것과 비교하면 실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대형 석탄화력발전소에 그냥 태워버리기 위해 보내는 목재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인증을 해주면서 말이다. 탄소가 저장된 나무를 태우면, 그것이 펠릿의 형태든 아니든, 결국 그 탄소를 내보내게 된다는 단순 명확한 사실도 부정하겠단 말인가? 당장 전면 중단해도 시원치 않은 것에다 인증에다 가중치까지 부여하는 것은 가장 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형국이다. 최근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의 청년들과 가짜 재생가능에너지 퇴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숲 태우기에 가산점 주는 이 해괴망측한 사기극은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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