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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정권교체” 외치는 ‘3주 전 감사원장’

등록 2021-07-21 18:46수정 2021-07-22 09:19

석진환 | 사회부장

대선의 계절이 시작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는 정치부 기자들 언저리에서 머리를 싸매는 한 무리의 또 다른 기자들이 존재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선후보 무한검증’이라는 막연하고도 위험한(?) 미션을 부여받은 기자들이다. 대선후보 검증 경쟁이 벌어지면 특종과 낙종, 정당한 의혹 제기와 과도한 흠집 내기가 어지럽게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때도 있다. 다만, 그 검증 절차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해서는 이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 것까지 캐고 물어야 하느냐’는 항변은 통하지 않는다.

무수한 잠룡들 중 유력 주자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그들 사이에 물밑 경쟁이 치열해질 때쯤이면 본격적인 검증도 비로소 시작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기자들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지지율이 높거나 상승 추세인 주자, 더구나 그중 선거를 통한 검증 경험이 없는 인물이 있다면 먼저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윤석열과 최재형. 이 두 사람이 현재 언론의 우선 검증 대상에 올라 있는 이유일 것이다. 판검사 출신들의 정계 진출이 많고 또 유리하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처지는 그와 사뭇 달랐던 탓도 있다. 한명은 직전까지 검찰총장을, 또 한명은 고위법관에 이어 감사원장을 지냈다. 엄격한 중립을 지키며 현실 정치에서 가장 먼 곳에 있어야 할 독립기관의 수장 둘이, 그것도 거의 동시에 정치의 가장 뜨거운 복판으로 몸을 던진 상황이다. 몸담았던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아물기 힘든 상처를 내고 떠난 만큼 검증도 당연히 뜨거울 수밖에 없다.

신문사 사회부에서 일하다 보니, 나 역시 이들에 대한 검증의 한 축을 맡아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두 인물 중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최근 행보를 보며 끊임없는 당혹감을 마주하고 있다. ‘검증이 필요하긴 한 걸까’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하는 중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경우 현재 여러 언론이 다각도로 검증을 진행 중이다. 지지율이 높은데다, 총장 시절부터 청와대·여권과 강하게 충돌해 정치활동 및 대선 출마가 예견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는 총장직을 던지고 정치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은 의미 있다. 하지만 절대적 원칙은 아니고 국민이 판단하실 문제”라고도 했다. 또한 형식적이긴 해도 지난 3월4일 총장직 사퇴 이후 정치 전면에 나서기까지 117일, 약 넉달의 공백기를 가졌다.

최재형 전 원장은 그런 면에서 보면 정치참여 과정 자체가 낯 두껍고 오만하다. 감사원장을 그만둘 때 내놓은 발언은 “저의 거취에 관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직을 계속 수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였다. 솔직하지도 않고, 외부에서 벌어지는 논란 때문이라고 떠넘기는 식이다.

그 뒤 행보는 숨 막힌다. 사퇴한 지 불과 9일 뒤 한 언론사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정치참여를 공식화했다. 그로부터 5일 뒤 ‘대한민국을 밝히겠다’고 대선 출마를 시사하고, 다시 3일 뒤 “정권교체의 중심은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며 야당에 입당했다. 그사이에 자신이 왜 독립적 헌법기관인 감사원 수장 자리를 던졌는지, 재임 기간 정치적 논란이 됐던 ‘원전 경제성 조작’ 감사에 개인적 욕심과 의도는 없었는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지방을 방문해 쓰레기 줍기 봉사를 하고, 당직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정강정책에 가장 공감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지지율이 아직 낮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3주간 그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다른 주자들과 달리 최소한의 공백기도 거치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다. 직업을 정할 때, 진로를 바꿀 때, 하다못해 검사나 판사가 옷을 벗고 개업을 생각할 때도 최소한 수개월은 고민한다. 대선에 출마해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져보겠다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숨기고 그토록 오래 감사원장을 지내며 준비했다면 비양심적이다. 최근에야 대선 출마를 생각했다면 준비가 덜 됐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그는 두고두고 남을 만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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