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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등록 2021-07-26 17:58수정 2021-07-27 02:09

김남일 디지털콘텐츠부장

오래전 대구로 취재 갔을 때다. “서울에서 올라오느라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받고는 순간 뭐지 했다. 이 동네 자존심이 이런 거였나 생각이 든 것은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서울 아닌 대구나 부산이 수도였다면 어땠을까. 수도 대구에서 직선거리로 80㎞ 떨어진 곳에 월성·신월성 원전 5기와 중저준위 방폐장이 운영될 수 있었을까. 수도 부산 머리쯤에 고리·신고리원전 7기를 모아놓을 수 있었을까. 한국은 원전 밀집도, 원전 반경 30㎞ 이내 인구수 모두 세계 1위다. 고리 주변에 380만명, 월성 근처에 130만명이 산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원전 설비용량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 환경단체는 무늬만 탈원전이라 비판한다. 그런데도 친원전 진영에선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도 탈원전 탓으로 우길 태세다.

덩달아 야권 대선주자들도 ‘원전만이 미래’라고 복창한다. 경제성 판단을 뒤로 물리고 정부정책으로 고리1호기 폐쇄를 결정한 당사자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아 보인다. 탈원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최재형은 자신을 권력의 길로 이끈 주요 계기로 이번 정부 탈원전 정책을 꼽았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대선에 나서며 원전 복귀를 선언했다. 대선후보 차출설이 나오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원전만큼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생산 방법은 없다”고 한다. 야권 유력주자와 현직 지자체장이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원전 찬가를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시쳇말로 이 역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다.

다들 탈석탄에는 동의하지만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제안한다. 국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모두 백지로 돌리고, 대신 수도권에 원전 건설 공약을 하라고. 일단 야당 표밭인 영남에서 그런 요구가 많다. 원전을 안고 사는 지역에선 “그렇게 안전하고 좋으면 여기 말고 서울에 지으라”고 한다.

‘원전 건설 입지조건을 알고나 말하라’는 사람들이 꼭 있다. 서울 등 수도권은 애초부터 원전 건설은 불가능하니 ‘원래’ 있던 곳에 더 지으라고 아는 척한다. 정말 그럴까. 지반은 지진이 잦은 경북보다 수도권이 훨씬 단단하다. 과학이자 상식이다. 인구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럼 원전 지척에 수백만명이 사는 영남부터 탈원전시키는 게 맞다. 부산은 남이가? 휴전선과 너무 가깝다고 한다. 북한 장사정포 위협으로 수십억원씩 하는 서울 아파트값이 떨어진 다음에 할 얘기다. 무엇보다 바닷물, 냉각수가 없다고 한다. 한강은 도랑인가? 원자로 식히기에 부족하지 않은 수량이다.

<한국 원자력 50년사>, <한국 원전 잔혹사>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965년 당시에도 전력 수요가 많았던 서울과 부산, 울산이 첫 원전 부지 물망에 올랐다. 경기 고양 행주외리, 경남 동래군 기장면 공수리와 장안면 월내리 3곳이 선정됐다. 서울 근처 행주외리는 뒤늦게 포함됐다. <50년사>를 쓴 한국원자력학회는 “수도 서울에 대한 장점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 쓰는 지역에 발전소가 있는 ‘전자유전’이 적용됐다면, 해질녘 행주산성에서 찍은 ‘행주1호기’ 사진이 2021년 에스엔에스에 종종 올라왔을 것이다.

좋은 건 서울로, 더러운 건 지역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천만명이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는 밖으로 밀어내고, 전기는 발전소로 인한 오염, 개발제한, 미세먼지로 고생하는 지역에서 약탈하듯 끌어쓴다. 서울로 이어지는 수천수만개의 송전탑이 에펠탑으로 보일 지역주민은 없다.

탈원전 로드맵은 잘해야 2080년께 완성된다. 그때까지 원전은 뜨겁게 돌아갈 것이다. 서울에는 아파트단지를, 지역에는 핵단지를 짓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에너지 전환은 방향성 못지않게 일관성이 중요하다. 태양광·풍력 같은 지역분산형 에너지에 대한 고민 없이 한번 정한 탈원전 경로를 기어이 되돌리겠다면 말로만 길게 떠들 것이 아니다. 구체적 공약으로 유권자 판단을 받는 게 솔직한 태도다. 수도권 원전 건설에 이번 대선과 정치인생을 걸어보라는 얘기다. 쫄리면? 영화 <타짜> 속 대사에 답이 있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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