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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플라톤이 30살까지 수학을 공부하라 한 까닭

등록 2021-07-28 14:07수정 2021-07-29 02:35

동양 인성교육의 기본이 사서삼경이라면 서양철학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서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비슷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림은 조선시대 교육 풍경을 담은 단원 김홍도의 <서당>.
동양 인성교육의 기본이 사서삼경이라면 서양철학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서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비슷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림은 조선시대 교육 풍경을 담은 단원 김홍도의 <서당>.

김민형 | 워릭대 수학과 교수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가교육회의가 주도한 ‘국민 참여 설문조사’가 5~6월 한달간 온라인으로 실시됐다. 초중고에서 현재보다 더 강화돼야 할 교육 영역 1순위로 ‘인성교육’(36.3%)이 가장 많이 꼽혔다.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1순위로 꼽은 응답자 비율은 4.9%밖에 안 됐다.

어떤 교육정책이든 해결해야 할 과제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목표하는 바를 정하는 것, 목표를 달성할 방법론을 찾는 것, 마지막 그런 방법을 실현할 교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첫번째 과제를 ‘인성교육진흥법’ 2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정도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한 목표에 그 자체로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기준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달라진다. 가령 세대가 다르면 ‘인간다운 성품’을 상당히 다르게 정의할 수도 있고, 종교에 따라서도 관점이 다를 것이다.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인의예지를 갈고닦은 사람, 성경의 교훈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신자, 또 자유민주주의 원리들을 숭배하는 현대인 다 제각기 다른 방법을 원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 전통적인 인성교육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공감력’을 도덕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노력도 한다.

동양 인성교육의 기본이 사서삼경이라면 서양철학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서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비슷한 지위를 차지한다. 잘 알려졌으면서도 잘 잊히는 사실 하나가 플라톤은 도덕을 포함한 모든 교육의 근본이 수학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걸작 <공화국>의 권장 커리큘럼에 의하면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유아기부터 18살까지 수학을 공부하다가 2년의 군복무 끝에 30살까지 또 수학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수학의 모든 분야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생긴 뒤에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그로부터 사회와 정치 활동을 제대로 할 기반을 갖춘다.

플라톤이 어떤 동기로 수학 교육을 그토록 중시했는지에 대한 각종 이론이 19세기 이후로 상당한 논란이 돼왔다.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수학이 엄밀한 사고력을 키워준다는 주장이다. 즉, 배우는 내용 자체와는 어느 정도 무관하게 짜임새 있는 사고력 훈련이 궁극적으로 모든 세상사에 대해 철저하게 생각하고 대처할 준비를 시켜준다는 착상이다. 또 하나 제시된 가능성은 수학이 질서와 패턴,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이 주 요점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이 생각한 ‘선’(善)의 개념에는 이상적인 형상의 세계의 진실이 핵심이고, 그런 세계의 형성은 수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학 없이는 진리를 알 수 없고 진리를 모르면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종류의 논리였다.

나는 수학과 인성의 관계를 다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한다. 우선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수학은 현대적 물질론에 대한 대안을 준다. 이는 수 체계나 기하적 구조들이 객관적인 진리를 표현하고 자연스러운 성질들을 지녔음에도 물질적인 객체로 묘사하기 어렵다는 기묘한 사실에 기원한다. 이 때문에 영적인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신학자들 가운데 수학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 다수 있고 수학은 인간에게 물질을 초월하는 실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면서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키워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수학은 다른 면으로도 세상의 진리에 대한 일종의 겸손을 가르쳐준다. 거의 40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면서 내게 남은 인생 교훈이 있다면 세상사에 대한 결론은 어느 하나도 내리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말의 의미나 논리의 구조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정의된 수학의 세계에서도 첨단 연구, 특히 자연과학과의 접점에서 하는 일은 수많은 실수를 수반하고 문장 하나를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기까지 여러 해의 집중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 후에는 보통 인간사에 대한 의견이 극히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즉, 내가 아는 것은 나의 무지밖에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가장 잘 깨우쳐주는 공부가 수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무지를 아는 것이 인성에 도움을 주는가 하는 의문도 가능하다. 가령 뛰어난 지도자라면 무지의 바닷속에서도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작업이 앎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일상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근본적인 미스터리를 인정하는 수학의 시각이 사람과 자연과 사회를 대하는 관대한 포용력을 키워주리라는 기대를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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