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배|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지우마 호세프…. 공통점이 있다. 혁명을 꿈꾼 라틴아메리카의 게릴라 출신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모순과 불평등, 독재에 맞서 총을 들었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그의 이상과 혁명의 꿈은 관광지 티셔츠와 머그컵 속 낭만적 혁명가로 소비된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브라질의 호세프처럼 최고 지도자로 변신한 인물도 있다.
혁명을 꿈꾼 게릴라에게는 영웅적 서사가 있다. 중미에 위치한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75) 대통령도 그 한명이다. 그는 친미 독재정권에 맞서 1961년부터 산디니스타해방전선(FSLN)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79년 썩어 문드러진 소모사 정권의 45년 독재를 무너뜨렸다. 그 혁명 뒤 1985년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자 미국은 좌파 정권을 끌어내리려고 중앙정보국(CIA)을 통해서 추악한 이란-콘트라 작전을 벌였다. 적국 이란에 불법으로 무기를 팔아서 그 돈으로 우익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5만명 가까이 숨진 내전을 배후조종한 것이다. 오르테가는 그런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서 저항했다.
그런데 과거의 혁명가는 지금, 그가 무너뜨린 독재의 길에 빠져들었다. 2007년 다시 대통령에 오른 뒤, 14년째 최고 권력을 쥐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다섯번째 대통령의 권좌를 탐하고 있다. 반역을 명분으로 야권의 대선 예비후보 7명 등 반대 세력 수십명을 체포했다. 2014년 헌법을 뜯어고쳐 연임 제한을 없앴고,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 해 2018년 이후 300명 넘게 숨졌다. 2017년 부통령이 된 아내는 2인자로 권력을 휘두른다.
이제는 그가 저항했던 미국에 인권을 탄압한다고 비난과 제재를 받는 처지가 됐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 좌파 정권조차 정적에 대한 잇따른 체포와 탄압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 “미 제국주의가 테러리즘을 다시 심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과거처럼 힘이 없다. 자유선거가 보장되기 어렵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오르테가 대통령을 비난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2010~2015)이다. 그는 이달 초 140여명의 라틴아메리카 좌파 지식인과 함께 오르테가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를 권력에 빠진 병자로 간주하고, “권위주의 대통령으로 변해서 부패에 물들고 원칙을 저버렸다”고 힐난했다. 그 역시 혁명을 꿈꾼 도시 게릴라였고 무장투쟁을 벌였다. 탈옥수이자 장기수였다. 대통령 재직 시 진보적 정책과 세계관은 그에 대한 영웅적 서사를 더욱 빛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린 청빈한 삶은 한국에서 책으로 나왔다. 대통령의 역할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지, 청빈하게 사는 게 최우선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추하게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고,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았다. 낡은 자동차를 끌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농사를 지으며 보여준 것은 청렴과 탈권위다. 그렇게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존중받는 어른이 됐다. 권위주의 정권을 붙잡고 일그러지는 오르테가 대통령과는 정반대다.
이미 2018년 무히카 대통령은 이렇게 훈계했다. “한때의 꿈은 빗나가서 전제정치가 됐고, 어제의 혁명가들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나는 간다’고 말해야 될 때가 있다.” 벌써 3년이 흘렀다. 26일, 정권의 탄압을 못 견뎌서 야권 대선후보가 니카라과를 떠난다는 뉴스가 또 나왔다. 과거의 혁명가, 게릴라 출신 대통령의 말년은 추하다. 그가 내세웠던 정의와 민주주의는 오간 데 없다. 이런 게 독재다. “독재정권”이라는 비난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라, 이럴 때 퍼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