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리팅팅 ㅣ 중국 베이징대 교수
지난 27일 남북한이 13개월 동안 단절됐던 통신연락선을 복원한다고 각각 발표했다. 양국 정상이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점과, 상호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 등에 합의했다는 점도 밝혔다. 양쪽이 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아 이를 발표한 것은 남북관계의 앞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된다. 중국과 미국 등 주요 관련국들도 잇따라 지지의 뜻을 밝혔고, 이번 조처가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 후 남한 쪽은 신속한 후속 조처를 통해 남북 대화를 한 걸음 더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30일 이미 북쪽에 화상회담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논의를 제안하는 한편, 남쪽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지원 물자 반출 신청 2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기존 연락 채널을 통해 재해·재난과 감염병 관련 정보를 교환하겠다고 알렸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산가족 문제가 가장 시급한 인도적 사안이자 최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꼽았다. 그는 화상 상봉이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이자, 당면한 코로나 상황에서 즉시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실효적인 방식”이라며, 앞으로 남북 간 협의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한국 쪽 제안은 당장 전면적인 국면 전환을 이끌어내기 어렵겠지만,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계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지역 정세를 안정시키고 충돌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려면 근본적인 문제에서 진전을 이뤄야 한다. 이는 북-미 대화의 재개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 비록 조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조정이 긍정적인 부분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모순적인 측면이 있어 현재까지 북쪽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핵심 관심사는 미국이 자국의 생존과 발전권을 위협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릴 수 있느냐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제재 해제와 평화체제 구축, 북-미 관계 정상화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대화와 억지의 병행이라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 역시 ‘선 대 선, 강 대 강’의 원칙에 따라 대화와 대결을 모두 준비한다고 밝혔지만, 양쪽 모두 대화 쪽으로 기울 수 있는 조건이 아직 미비한 상태다.
남한이 북-미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북-미 대화 재개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여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북-미 양자 대화의 취약성이 다시 한번 부각된 만큼, 남쪽이 북-미 대화를 중재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시작으로 하노이 이전의 북-미 합의를 토대로 양쪽의 최근 정책 변화를 반영해, 비핵화와 적대시 정책 철회의 새로운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다자간 협력을 통해 쌍방에 대한 중재와 약속 이행의 구속력을 높이는 것도 대화 재개의 장애와 문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거 진행했던 4자회담과 6자회담은 이를 위한 성공적 경험으로 삼을 만하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국 전략 경쟁을 강화하는 상황에서도, 핵 비확산 분야에서 중-미 협력을 강조해온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식량과 백신 문제에서는 절실한 수요가 있을 수 있지만, 그간 북한은 특정 국가의 일대일 지원보다는 유엔 등 국제기구의 플랫폼을 통한 지원을 선호해왔다. 때문에 정부 간 직접 지원보다는 유엔 식량 관련 기구들이나 코백스 프로그램과의 연계와 소통을 통해 국제적 대북 식량지원과 백신 지원의 규모 확대나 가속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보인다. 정책적인 중재 이외에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외부 물자의 북한 유입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과 방역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북-중 간 무역 관리의 최근 경험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