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정치부장
‘하면 된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틀림없을 것이다. 40여일 전 정치 참여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 두 사람 말이다. 이들은 “하면 된다”는 말, 순간적으로 고도의 각성 효과를 일으켜 업무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에너지 음료 같은 이 명제를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인들 말마따나 “몇달 전까지만 해도 정치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처럼 과감히 출사표를 던질 리는 없다.
공개 행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에겐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윤석열 전 총장은 개인에게 선택할 자유를 줘야 하기 때문에 부정식품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고, 페미니즘이 건전한 남녀관계를 가로막는다는 궤변을 펼쳤다. 심지어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이 없었다고까지 주장하며 팩트를 왜곡했다. 최 전 원장은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쏟아진 기자의 질문들에 “준비가 부족해서 죄송하다”며 진땀을 뺐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은 지적할 수 있어도 굳이 “범죄”라는 극단적인 언어까지 사용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고, 차이점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태도(최재형)와 “(어디선가) 들은 얘기”라며 받아넘기는 모습(윤석열) 정도다.
물론, 이들이 출마한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내재적 접근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정권에 반기를 들며 정치에 뛰어든 1차적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처 이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사권자의 책임이다. 두 사람을 거칠게 공격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 여권 인사들도 비판받아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법치와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대한민국을 일으켜야 한다는 애국심에서 대선에 도전했다는 이들의 말을 진심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부닥치는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도 될까? 가령,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인 부동산 문제를 들어보자. 이들은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정부 의지만 있으면 집값 잡기 어렵지 않다.”(윤석열) 의지 부족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무능 때문에 집값을 잡지 못했다고 하면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도대체 국민들에게 무슨 앙심을 품었길래 이렇게 집값이 뛰도록 일부러 손을 놓았겠는가. 최 전 원장도 “문재인 정부 한 것 반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대안으로 임대료 안정을 제시했다. “앞으로 장기간 이런 상태(임차인으로 사는 것)에서도 살 수 있겠다는 안정감을 가지면 주택을 시급히 구매하려는 현상이 안 나타난다”며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풀면 된다”고 했다. 묻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부동산 문제가 과연 그렇게 쉽게 풀릴 사안일까?
두 사람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충정은 있을지언정, 앙상한 반문재인 깃발만 흔드는 정치적 편의주의를 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반대’라는 선명한 한쪽 편을 선택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대선을 눈앞에 두고 행하는 선거의 정치가 아니다. 흑백을 가리기 힘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안에서 진지한 해법을 내놓는 일상의 정치다. 그러려면 조 바이든의 말처럼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판단을 숙성시킬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년 동안 판사와 검사로 살아온 두 사람이 불과 몇달 동안 벼락공부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만약 진심으로 정치를 두번째 직업으로 삼고 초보 정치인으로서 ‘경험’을 쌓기 위해 대선에 나온다면, 그건 선택의 자유이니 오케이.
정희진은 “하면 된다”의 폐해를 이렇게 지적했다. “해서 되는 일이 하나라면 안 되는 일은 아흔아홉개다. 뜻한 바가 많을수록 좌절과 불행이 동반 방문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하면 된다는 근대화 정신은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상식을 잠식한다.”(<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중)
한다고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그리고, 하면 안 되는 일도 있다. 몇달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대통령 될 수 있다는 착각은 하면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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