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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올림픽과 국가 연주 / 정혁준

등록 2021-08-11 16:07수정 2021-08-12 02:38

도쿄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에선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20번 울려 퍼졌다. 러시아가 도핑 샘플 조작으로 2022년까지 올림픽에서 국가를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러시아는 도핑 문제로 시상식에서 국가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땐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됐다. 당시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번엔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클래식의 힘으로 화제를 모았다.

애초 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도쿄올림픽에서 ‘카추샤’를 사용하겠다고 요청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러시아 색채가 강한 민요(folk song)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사실 ‘카추샤’는 러시아 민요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8년 시인 미하일 이사콥스키가 지은 시에 작곡가 마트베이 블란테르가 곡을 붙여 만든 창작곡이다. ‘카추샤’는 예카테리나의 애칭으로, 러시아에서 흔한 이름이다. 톨스토이 소설 <부활>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카추샤’는 러시아(옛 소련)가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독소전쟁을 거치면서 러시아 국민가요로 거듭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남유럽과 동유럽에서도 나치 저항단체들이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 이스라엘에서도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2013년 터키 반정부 시위 때는 시위대가 가사를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사를 고쳐 응원가로 많이 불렀다. 고려대와 프로야구팀 키움 히어로즈의 응원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거듭난 ‘카추샤’를 도쿄올림픽에서 연주했다면, 더 많은 화제를 낳았을 것이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국가가 아닌 곡이 연주되는 걸 보면서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다른 나라 국민들은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국가보다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클래식이나 대중가요가 시상식에서 나온다면? 모차르트, 비틀스, 마이클 잭슨 노래를 들으며 보는 올림픽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올림픽으로 촉발되는 민족주의나 군국주의도 다소나마 줄여줄 듯싶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방탄소년단의 ‘버터’가 올림픽에서 울린다면 한국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건, 확실해 보인다.

정혁준 문화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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