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편집인의 눈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삼성 엑스파일 보도는 징벌적 손배제 대상이 되는 거다.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한겨레>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도 기자의 요양원 위장 취업을 이유로 업무방해죄 등이 적용될 수 있다. 또한 개정안은 ‘정정보도가 청구된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도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이가 정정보도 청구만 걸어두면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를 차단할 수 있단 얘기다.1997년 신라호텔.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고위관계자와 중앙일간지 사주가 만났다. 두 사람은 대통령 후보에게는 불법 정치자금을 검찰 고위간부들에게는 뇌물(‘떡값’)을 주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의 비밀 대화는 8년 뒤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새삼 ‘삼성 엑스(X)파일’ 얘기를 꺼낸 건 더불어민주당이 8월에 통과시키겠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때문이다. 개정안에 담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적용 요건과 내용을 수학공식 형태로 표현하면 이렇다. 허위·조작보도+고의나 중과실+(공인 등에 관한 보도라면) 악의=피해액의 5배 배상. 늘 그렇듯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선 ‘허위·조작보도’의 의미다. 언론사가 허위사실인 걸 알고도 일부러 사실처럼 조작해 보도하는 경우를 벌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법안에 따르면 ‘허위·조작보도’는 두가지 중 하나다. 첫째, 허위사실을 보도한 경우. 둘째,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경우. 가령, 떡값 검사로 지목된 검찰 고위관계자가 “삼성 엑스파일에 담긴 건 금품을 전달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라 단지 고려하겠다는 것이고 나는 어떤 금품도 받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보자. 부존재사실(‘금품을 받지 않았다’)을 원고가 증명하기는 어려우니 언론 쪽으로 입증책임이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해당 검사가 실제로 금품을 받았다는 구체적 증거를 언론이 제시하지 못하면 ‘허위보도’가 된단 얘기다. 혹은 기사의 표현 방식, 제목 등으로 인해 기사를 접한 사람들이 특정 검사가 금품을 받았다고 오인했다면 ‘조작보도’가 될 수 있다. ‘허위’나 ‘조작’을 법정에서 판별하는 건 지난한 일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서로를 향해 제기한 의혹들이 모두 재판에서 사실로 확인된 건 13년이 지난 2020년의 일이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정봉주 전 의원의 죄명은 ‘허위사실공표죄’다. 언론에 ‘고의나 중과실’이 있을 때만 적용한다니 안전장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해 보도하면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게 된다.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삼성 엑스파일 보도는 징벌적 손배제 대상이 되는 거다.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한겨레>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도 기자의 요양원 위장 취업을 이유로 업무방해죄 등이 적용될 수 있다. 또한 개정안은 ‘정정보도가 청구된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도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이가 정정보도 청구만 걸어두면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단 얘기다. 고위공직자, 대기업, 대기업 임원 등에 관한 보도인 경우에는 ‘악의’가 있는 경우에만 징벌적 손배제를 적용하도록 돼 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같지만 유명무실하다. ‘보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것을 인식한 경우’,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등을 ‘악의’가 있는 것으로 본다. 떡값 검사라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그 검사에게 손해가 발생할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까? 대기업과 유착관계라는 의혹 보도가 공정한 법의 집행자여야 하는 검사의 명예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히는 보도가 아닐 수 있을까? 언론 보도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합당하게, 그리고 언론이 보도 과정에서 얼마나 충실히 취재했는지를 고려해 손배액을 책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2017년 대법원 위자료 연구반은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 위자료 산정 방안’에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일반피해와 중대피해로 나누고 특별가중사유를 명시했다. 일선 법원이 재판에서 이 기준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손배액 현실화에는 더 도움이 되리라 본다. 시민들의 피해는 제대로 구제하되, 감시 비판 보도를 막으려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가능성은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 책임이 크고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할 공인과 공적 존재는 징벌적 손배제를 아예 청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배제를 언론개혁과 등치시켜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언론계는 다수 국민이 징벌적 손배제를 찬성하는 엄중한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구체적인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방종을 멈추라는데 자유의 숭고한 가치만 주장해서는 이해와 지지를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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