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명백하다. 분명하다. 모호하지 않다. 영어 단어 ‘unequivocal’의 의미이다. 갑자기 무슨 하루에 한 단어 외우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와는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얘기이다. 바로 지난 8월9일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 본문을 여는 말이다. 심각한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인간 때문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고,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다고 말이다.
당신이 이런 뉴스는 그냥 넘기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딱 한가지만 안고 가기를 바란다. 이런 보고서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지구의 온도를 1.5℃ 아래로 묶을 수 있는 시간이 이미 너무나 적게 남아 있어서, 그사이 이런 보고서가 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이 마지막 경고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이번 보고서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지금이 비상사태라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 발견되는 약간의 차이도 있다. 과학자들이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에 없던 비장한, 음울한 톤이 느껴진다. “지옥”과 같은 표현도 인터뷰에서 속속 등장한다. 또 한가지 큰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앞으로 20년 안으로 지구 온도가 1.5℃ 이상 상승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때 2050년, 아니 2100년의 목표치로 삼았던 상승폭이다. 이제는 근미래에 일어날 일이 돼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그냥 일상을 사는 당신이여. 아직도 기후변화와 같은 ‘크고 먼 얘기’는 ‘피부와 와닿지 않는다고’ 하는 이를 위해 지난 두세달 안에 일어난 일들을 간략하게 열거해본다. 물론 이조차 급격히 녹고 있는 빙산의 일각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로 불리는 시베리아 북동쪽 도시 베르호얀스크가 30도, 야쿠츠크가 35도로 불타올랐다. 모스크바는 지난 120년간 가장 더운 6월 기온에 해당하는 34.7도를 기록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리턴은 무려 49.7도의 화염 속에서 불탔고, 미국 오리건주의 포틀랜드가 44.4도, 워싱턴주의 시애틀이 42.2도로 데워졌다. 캐나다와 미국 동북부를 강타한 이번 폭염은 천년에 한번꼴로 일어날 북미 역사상 가장 극한적인 열파로 기록되었다. 파키스탄 대부분의 도시가 40도를 넘어섰고 남부 신드 지역의 도시 자코바바드는 48도까지 치솟았다. 이라크는 50도를 웃도는 초유의 폭염에 전기까지 끊겨 시민들은 더위를 무릅쓰고 시위에 나섰다. 리비아는 사막의 저기압이 닥치면서 평년 기온을 10도 이상 넘는 날씨가 나타나면서 최고기온이 40~46도를 기록했다. 터키와 그리스는 찌는 듯한 더위에 산불까지 대규모로 퍼지면서 아테네가 45도까지 달궈지고, 북쪽 테살로니키 인근의 랑가다스는 47.1도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같은 시기에 남부 이탈리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코소보도 강력한 폭염에 신음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시칠리아는 무려 48.8도라는 유럽 기상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독일은 24시간 내에 15㎝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200명가량이 사망했고, 홍수의 피해는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까지 확대되었다. 중국 허난성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물폭탄으로 지하철이 잠기면서 열차 안에서 수면 위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이 전세계에 보도되었다.
어떤가? 이래도 기껏 30도 살짝 넘는 날씨를 두고서 ‘찜통’이니 ‘가마솥’ 더위라고 부를 것인가? 아직도 피부와 와닿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지옥이 이렇게 시뻘겋게 눈앞에 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