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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재승 칼럼] “이재용 부회장이 억울하다”는 조선일보

등록 2021-08-16 13:39수정 2021-08-16 16:05

삼성 총수 일가의 대를 이은 불법·비리를 가능하게 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감시와 비판을 제대로 했다면 불법·비리는 일찌감치 중단됐을지 모른다. 삼성 앞에선 입도 뻥끗 못 하면서 입만 열면 ‘언론 자유’를 외치는 언론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언론 자유’인지 이재용 부회장 관련 보도부터 성찰하기를 권한다.
그래픽 최정미
그래픽 최정미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언론 비평 매체 <미디어오늘>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 다음날인 10일 ‘사법 정의 포기한 이재용 가석방 결정, 언론 역할 컸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되는 과정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보인 보도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줘야 한다’ 는 신호를 올해 상반기 내내 퍼트렸다. 여론조사 결과를 활용해 재벌의 사법 특혜를 ‘국민 동의를 받는 문제’로 치환했다. 이 부회장을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에 빗대는 등 미화· 왜곡도 서슴없이 나왔다. 사법 정의와 평등의 문제는 이 같은 보도 홍수 속에서 ‘삼성 총수 구하기’로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을 훼손한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일차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지만 언론의 책임 또한 무겁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기사였다고 본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의 보도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환영하고 합리화하는 것을 넘어 아예 이 부회장이 처음부터 죄가 없었다고 강변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 부회장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시켰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선일보는 10일 사설 ‘5년 공백끝 복귀 李부회장, 경영 성과로 억울함 입증하길’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처음 수사했던 검찰조차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보았지만 박영수 특검이 뇌물 사건으로 바꾸었고 결국 강요를 당했다는 이 부회장이 뇌물 공여 범죄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문 정권은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앞 정권의 캐비닛 문건을 찾아냈다며 법원에 제출했고,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증언대에 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문 정권이 이 부회장을 감옥에 보내려 작심했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가 민정비서실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박근혜 정부 문건 300여건 중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등이 들어 있었고 이를 검찰에 제출한 일이 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이 문건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지시로 작성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 교수 시절 삼성 고위관계자가 수시로 주요 경영 현안에 관한 의견을 구해와 조언해준 내용을 공개했다. 이걸 ‘문재인 정부의 재판 개입’ 근거라고 들어 이 부회장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사설을 쓰는가? 어처구니가 없다.

<문화일보>는 ‘ 이재용 가석방 … 文 정권의 전방위 삼성 옥죄기 돌아봐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국정농단 사건’에 경영권 불법승계와 분식회계 재판 등까지 더해 “정권이 총출동해 전방위 옥죄기를 하는 셈이다”라고 주장했다 . <한국경제>는 ‘사면 아닌 가석방…경제보다 정치적 계산 앞선 것 아닌가’ 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부회장의 수감 사유가 국정농단이라는 정치색 짙은 재판이란 점도 되돌아봐야 한다. 이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으로 행한 경영행위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덧씌워 장기 수감하는 것이 정의인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

이들 신문에 묻는다. 대법원 판결마저 부정하는 건가?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돌아보자. 이론의 여지없이 명확하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기대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줬다고 판결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을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인 대통령과 최고 경제권력인 삼성 총수가 결탁해 거액의 뇌물과 경영권 승계 지원을 주고받은 정경유착이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회사 자금을 횡령해 건넨 뇌물 액수도 36 억원이 아닌 86 억원으로 판단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횡령액이 50 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 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파기환송심에서 최저 양형기준에도 못 미치는 2년6개월 징역이라는 ‘봐주기 판결’을 했고, 법무부는 가석방 기준까지 낮춰가며 이 부회장을 풀어줬다. 이게 어느 하나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이재용 유죄와 가석방’의 실체적 진실이다. 조선일보 등을 보면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트집잡는 일본 정부가 떠오른다. 이들 신문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아베와 스가 정부의 억지와 다르지 않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는 삼성의 일상적인 기업 활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 범죄’다. 자신의 경영권 승계라는 사익을 위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까지 입힌 횡령·뇌물 범죄다. ‘삼성 위기론’이니 ‘반도체·백신 기여론’이니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삼성 총수 일가의 대를 이은 불법·비리를 가능하게 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만약 언론이 삼성 총수 일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제대로 했다면 불법·비리는 일찌감치 중단됐을지 모른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을 어겼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기사와 사설을 쓰면 된다. 삼성 앞에선 입도 뻥끗 못 하면서 입만 열면 ‘언론 자유’를 외치는 언론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언론 자유’인지 이재용 부회장 관련 보도부터 성찰하기를 권한다.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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