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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28% 선이자라니…머지야 4랑해

등록 2021-08-18 19:03수정 2021-08-19 02:39

정세라

사회정책부장

“언니, 머지 신공 알아?” ‘각종 할인 꿀팁’ 전수자인 여동생이 올봄에 내게 ‘머지’를 전도했다.

여동생이 전해준 복음을 받들어 11번가에서 머지포인트(머지머니) 10만원권 2장을 20% 할인받아 16만원에 결제하니 ‘모바일 상품권’이라며 코드번호를 보내줬다. 머지 앱을 내려받아 코드번호를 등록하니, 16만원이 흔히 드나드는 가게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20만원 포인트로 대번에 바뀌어버렸다.

의아하긴 했다. 어찌 보면 선불충전식 간편결제인가 싶은데, 어찌 보면 ‘깡’이 심한 상품권 거래 같기도 했다. 구두상품권이야 옛적에 50% 할인으로 오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애초에 구두 정가에 잔뜩 거품을 넣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이건 사용처가 극히 한정적이지도 않았다. 동네에 널린 편의점, 대형마트, 대형 프랜차이즈 등 쓸 곳이 많아서 현금과 유사했다. 게다가 ‘할인’을 구독한다는 신개념도 도입했다. 한달에 1만5천원씩 내고 머지플러스를 구독하면 가맹점 무제한 20% 할인인데, 구독료만큼 할인 혜택을 못 받을 경우 차액은 머지머니로 되돌려준다. 뭔가 ‘혁신’스럽기도 했다.

처음엔 20만원어치를 샀지만, 두번째는 60만원어치를 한번에 사버렸다. 뭐, 사실 의심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돈 버는 본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20% 할인을 제공하는 거지? 플랫폼 간편결제 좋아하는 눈먼 투자자라도 잡았나? 저금리 시대에 선불충전금 걷어서 이자로 20% 수익이 날 리도 없고, 선불금 모아서 바이오 주식이나 코인 굴리는 거 아녀? 농담 같은 생각들이 스쳐 갔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도 깊지도 않았다. 눈앞의 할인은 달콤했고, 리스크를 가릴 핑계가 되어줄 ‘병풍’들은 그럴듯했다. 아서라, 이마트나 홈플러스나 부도날 회사 포인트 결제를 받아주진 않겠지…. “이 동네가 원래 그렇잖소. 사업모델 잘 만들어서 몇년 뒤 손익분기점이 나오고 뭐 그런 비전 자체는 생각도 안 하는 창업가들 수두룩해. 반짝 뜰 만한 아이디어로 언론 조명을 받거나 바이럴 마케팅 잘해서 투자자를 모은다, 그리고 적자 감수하면서 플랫폼에 사람을 모은다, 그걸 기반으로 상장하거나 사업을 팔고 나가 대박을 친다, 뭐 그런 꿈들을 꾸니까.” 혁신으로 포장된 판교밸리의 일부 한탕주의를 비판하면서 금융은 여기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걱정하던 어떤 이의 말도 떠올랐으나, 곧 잊어버렸다. 일상소비를 하면서 회사 재무제표를 뒤져보고, 기업가치를 가늠해보고 하는 ‘열심’은 없었으니까.

아마도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입점하고, 시중은행까지 협업이 이뤄지니 그들이 검증했겠거니 했을 것이고, 정부 당국이 뭔가 제도적 안전장치를 뒀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 당국의 규제 빈 공간 사이에서 모래성 같은 신뢰를 기반으로 영업하다가 규제 이슈가 불거지면서 한순간에 환불 대란으로 이어져버렸다. 지금 앱을 눌러보니 한때 6만여개에 달했다는 가맹점 사용처는 한곳도 뜨지 않는다. 사건은 금융당국에서 검경까지 넘어갔으니 그간의 영업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곧 윤곽이 나오리라….

나는 큰 금액을 물리지 않았지만, 동생은 제법 많이 물린 모양이다. 뭘 그리 많이 샀어? 깜짝 놀라 물으니 머지플러스 선불 구독권도 여럿 사들였다 한다. 내 핸드폰 문자에도 월 구독료 1만5천원 1년치 18만원을 한꺼번에 내는 연간권을 사면 매달 1만5천원을 환급해주는데다 은행머니 5만원을 미리 사은 혜택으로 준다는 행사 광고가 도착해 있었다. 업체에 18만원 빌려주고 원금에, 5만원 선이자에 가맹점 20% 무제한 할인 권리도 덤으로 준다는 파격 조건이다. 무려 1년 만기 28% 선이자 상품이라니…. 최근엔 20만원 포인트를 16만원 안팎에 팔면서 4천원 즉시 적립 행사(머지야 4랑해)도 추가했던 모양이다. 아이고야 동생아, 알았으면 말렸을 게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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