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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중세 학자의 이민

등록 2021-08-25 16:12수정 2021-08-26 02:35

10~12세기의 가즈나비드 제국은 전성기에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며 세계 문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중세 최고 학자로 꼽히는 알 비루니가 정착한 마무드의 궁은 현재의 아프간 도시 가즈니에 있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의 주도인 가즈니 시내 광장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깃발이 걸려 있다. 가즈니/AP 연합뉴스
10~12세기의 가즈나비드 제국은 전성기에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며 세계 문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중세 최고 학자로 꼽히는 알 비루니가 정착한 마무드의 궁은 현재의 아프간 도시 가즈니에 있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의 주도인 가즈니 시내 광장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깃발이 걸려 있다. 가즈니/AP 연합뉴스

김민형 │ 워릭대 수학과 교수

수학을 수십년 공부하면서도 나는 기초적인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 어느 학교 선생님이 삼각함수를 이용해서 산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법에 관해서 물었다. 얼른 생각나는 방법은 산에서 멀리 떨어져서 평야와 산의 정상이 이루는 각도 A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상 바로 밑점까지의 거리를 d라고 했을 때 높이는 공식 h=d·tan(A)에 의해서 주어진다. 각도를 측정하려면 요새의 측량사는 경위의(經緯儀)라는 기계를 쓰고 중세에는 아스트롤라베(astrolabe)라는 복잡한 장치가 널리 사용됐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지적한 난점은 산 때문에 정상 밑점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이 문제의 해결이 중세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알 비루니(973~1048)의 업적 중 하나이다. 아이디어는 각도 A를 측정한 다음 산을 향해서 거리 c만큼 전진한 뒤에 그 자리에서 산 정상의 각도 B를 다시 측정하는 것이다. 삼각형 사이의 관계를 약간만 이용하면 h=c·tan(A)·tan(B)/(tan(B)-tan(A))라는 편리한 공식이 나온다. 위 공식보다 다소 복잡하지만 적당한 지점 두개를 정하고 탄젠트 함수의 값만 계산할 수 있으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아마도 이 공식 자체는 알 비루니 전에 이미 발견돼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전문가 몇의 영역이었던 삼각함수 이론의 최고 권위자였던 알 비루니는 이런 사고를 크게 확장해서 놀랍게도 지구의 반지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산의 높이 h를 알아내고 정상에 서서 수평과 지평선 사이의 각도 x만 하나 더 측정한 다음 지구 중심에 꼭짓점을 둔 큰 삼각형을 이용하면 반지름 공식 R=h·cos(x)/(1-cos(x))가 나온다. 이렇게 해서 그는 지구의 반지름이 6336㎞라고 추정했다고 한다. 실제 값이 6371㎞니까 그 옛날에 오차 1% 이내로 측정한 것이다.

알 비루니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호라즘 출신으로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였던 8~14세기 기간 중 절정기에 활동했던 셈이다. 호라즘은 페르시아와 이슬람 문명의 지배하에 문화와 과학의 발전이 중세 동안 급격하게 이루어진 지역으로 9세기경에는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 콰리즈미의 고향이기도 했다. (현대 계산학의 핵심 개념 ‘알고리즘’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알 비루니는 젊은 시절 수학 외에 천문학, 철학, 물리학, 법학, 신학, 의학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배경을 기반으로 그는 세상만사에 관해 10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기 때문에 ‘측지학의 아버지’, ‘인류학의 원조’, ‘비교 신학의 아버지’ 등 다양한 수식어가 그의 이름을 따라다닌다. 그러나 알 비루니가 살았던 시기는 18~19세기 유럽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혼란기이기도 해서 아프리기드, 사마니드, 가즈나비드 왕국들이 현재의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히는 분쟁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알 비루니 역시 고향을 떠나 전쟁을 피하며 문화적 밀도가 높은 도시들인 부하라, 라이, 구르간 등에서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긴 여정 끝에 그는 가즈나비드 제국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학문을 장려하던 제왕 마무드의 배려로 왕궁 점성술가로 임명되면서 융합적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백과사전적인 의약서를 집필하는 반면 제왕의 원정군을 따라서 멀리 인도까지 여행해 인도의 철학, 수학, 천문학, 종교, 사회상 등을 묘사하는 방대한 저서를 남기기도 해서 그는 ‘인도학의 아버지’라는 명칭도 가지고 있다.

가즈나비드 제국(977~1163)은 전성기에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며 세계 문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천문학과 의학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중세 대륙의 통용어와 같던 페르시아어 문학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기도 했다. 알 비루니가 정착한 마무드의 궁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의 도시 가즈니에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등의 지배를 받고 7세기에는 불교의 중심지가 돼서 서유기의 현장법사가 방문하기도 했던 이 도시가 근년에는 알카에다의 본거지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지난 12일 즈음 탈레반에 의해서 점령됐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가즈니 요새와 마무드의 후예 마수드 3세의 이름이 붙은 웅장한 궁전의 잔재가 사진으로 이곳저곳에 실리기도 했다. 이 역사적인 도시가 이민을 받기보다는 배출하는 장소가 돼버렸고 더 이상 고급 문명의 중심지라는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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