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 정치에디터
노후에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선 10억원 이상의 은퇴자산을 모아야 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를 키우며 일밖에 모르고 살다 보면 어느덧 물러날 때가 된다. 은퇴 뒤 무엇을 하고 어찌 먹고살 것인가, 오랜 고민에도 쳇바퀴 돌듯 또렷한 답을 얻을 수 없다. 일찌감치 아파트를 장만해 촛불 정부 4년4개월 동안 엄청난 자산 증가 수혜를 본 몇몇을 빼면 또래 친구들은 몇년 뒤 닥칠 삶이 큰 근심이다.
“60살 이후, 길고 긴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40대 중후반부터 10년째, 우리 사이엔 말만 무성했다. “지금처럼 애들에게 다 퍼주면, 불우한 노인이 될 것”이라는 자조 속에 자주 오가는 말이 있었다. “자연인처럼 살면 되지.” <나는 자연인이다>(MBN)를 보면서 허름하지만 단출하고 자유롭게, 자연을 벗 삼아 치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고 했다.
결단했다. 올해 5월, 큰맘 먹고 산비탈에 땅을 샀다. 재원의 한계 탓에 대개 기피하는 맹지를 샀다. 나름 숙고했다. 밭 옆엔 작은 하천이 있다. 국가 소유니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할 일은 없을 듯했다. 물 걱정 없고, 전망 좋고…. 좋은 것만 보였다. 사업에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건강을 잃고 생존을 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자연인’이 아니라 준비된 귀농을 결심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도 다시 읽었다. ‘사람이 소박한 생활을 하며 자신이 직접 가꾼 농작물만 먹되 필요한 만큼만 가꾸며, 또한 거둬들인 농작물을 충분치도 않은 양의 호사스러운 기호식품과 바꾸려 들지 않는다면 단지 몇 라드(약 25㎡)의 땅을 일구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이 부분이 눈에 쏙 박혔다.
지난 석달, 마음은 오락가락한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 비탈면에 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즐거움. 자생하는 박하가 내뿜는 알싸한 향, 경계면에 자라는 상큼한 앵두와 달콤한 오디는 행복지수를 높였다. 내 손으로 땅을 일구고 내려올 때마다 앞으로 몇년 뒤 이 마을 농가 한채 세를 얻고, 채소를 가꾸면 국민연금에 기댄 최소 비용으로 지속가능한 노후를 기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현실을 절감했다. 하천은 자주 바닥을 드러냈다. 비가 올 때 며칠만 흐르는 건천이었다. 우물을 파려 하니 수백만원을 달라 한다. 꼭 물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단다. 모기, 개미 물림은 애교다. 진드기, 풀독에 탈이 나 피부과를 빈번히 오간다. 아내와 모처럼 의기투합해 산 밭인데 온종일 땡볕에 허리를 굽히다 보면 “왜, 이런 결정을 했냐. 너라도 좀 말리지”라며 서로를 탓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추억이 서린 곳도, 나를 품어줄 오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건축탐구 집>(EBS)에 나옴 직한 멋진 전원주택의 삶은 아니라도 <한국기행>(EBS)에 나오는 이들 같은 그럴듯한 삶을 그렸다. 섣부른 기대였다.
돌이킬 수도 없다. 고심 끝에 지난 주말 배나무, 사과나무, 호두나무 몇그루를 심었다. 추위를 견디며 잘 자라는 품종을 택할 생각이다. 물이 귀해 모처럼 내린 단비를 고무 대야에 정성스레 모았다. 그런데 때아닌 가을장마란다. 새 근심이 또 피어오른다. 제대로 가을 농사를 지어보려 중장비를 불러 밭을 파헤치고 돌도 골라냈는데, 이제 온 땅이 진흙탕이다.
대책 없는 은퇴에 따른 막막함을 피하려 미리미리 시작했건만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지난 석달 대차대조표는 엄청난 적자다. 밭 정비를 위한 중장비 대여, 과실수 식재 등에 족히 200여만원이 들어갔다. 감정노동도 적지 않다. 알게 모르게 원주민을 신경 써야 했다. 귀농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는 유튜브 영상에 뒤늦게 백배 공감했다.
잡초만 뽑아도 행복하다는 귀농 성공담은 절반의 진실인 듯하다. 뒷산에서 나물을 채취하고 앞 개울에서 버들치를 잡아 뚝딱 건강식을 만드는 자연인은 현실에선 흔치 않다. 힘겨운 노동과 적지 않은 자본을 긴 시간 동안 투입해야 밭은 제 꼴을 갖출 것 같다. 아침 7시부터 과실수를 옮겨 심던 아내가 말했다. “이러다 쓰러질 것 같아.” 대꾸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각박한 직장생활을 끝내고 자연인처럼 사는 것 역시 힘겨운 현실임을 절감한다. 어쩌면 은퇴 뒤 삶은 더 냉정한 현실일 것이다. 귀촌, 귀농도 또 다른 직장생활의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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