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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법 앞에 선 문지기들

등록 2021-08-30 17:28수정 2021-08-31 11:39

전종휘 사회에디터

수많은 해석을 낳는 20세기 초반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초단편 소설 ‘법 앞에서’는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법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시골 사람은 험상궂게 생긴 문지기한테 그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한다. 문지기는 거부한다. 시골 사람은 “법이란 정말로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의 문 앞을 지키고 선 문지기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법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몇년을 지낸 시골 사람은 하다못해 문지기가 입은 모피 옷의 벼룩한테까지 들여보내 줄 것을 부탁한다. 물론 실패한다. 결국 그 앞에서 삶의 끝을 맺은 시골 사람이 마지막으로 묻는다. 지난 몇년간 자신이 들어가려 한 그 문을 통과하려는 다른 사람은 왜 아무도 없었냐고. 문지기가 대답한다. “이곳에선 너 이외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어. 왜냐면 이 입구는 단지 너만을 위해 정해진 곳이기 때문이야”라고 한 뒤 이제 그 문을 닫겠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법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 완고한 문지기란 기존의 단단한 제도와 관행, 권위, 기득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한국 사회 많은 노동자도 수십년간 ‘법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열리지 않는 문 이쪽 세상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불안정한 고용과 차별적인 저임금, 무지막지한 해고의 남발,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해도 돌아오는 “나는 네 사용자가 아니니 하청업체 사장을 찾아가 얘기하라”는 무책임한 말 같은 것들이다. 그 문 통과를 가로막는 문지기는 중국 예술 천극에 나오는 배우의 변검처럼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다. 노동력은 마음껏 써도 노동자의 생명과 노동권은 안중에 없는 자본가의 낯이기도 하고, 사용자의 노동법 위반이 제아무리 많이 법원에서 확인돼도 “고의성이 없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검사의 낯이기도 하며 미래에 예상되는 경영 위기만으로도 노동자를 대량으로 정리해고 할 수 있다며 법봉을 두들기는 법관의 낯이기도 하다. 5명이 일하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근로기준법을 3명이나 4명이 일하는 사업장엔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차별적 제도를 수십년째 쳐다보지도 않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력의 민낯도 빠질 수 없다. 여기까진 익숙한 문지기의 얼굴이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외주화한 콜센터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반대하는 정규직 노동자 수백명이 ‘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동조합’이란 이름의 노조를 결성했다. 이 노조는 공채시험도 보지 않은 콜센터 노동자들을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로 받아들이는 건 공채직원에 대한 역차별일뿐더러 공사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직접 고용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도 보아온 풍경이다. 11개 민간위탁회사에 간접 고용돼 일하는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 투쟁에서도 정규직 노조는 연대하는 대신 반대의 뜻을 밝혔고,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직군 간 이동이 가능하거나 같은 임금을 달라는 것이 아닌데도,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고용 안정에 반대하는 풍경은 살벌하기만 하다. 이들은 공정성을 이루는 여러 축 가운데 시험에만 주목한다. 자신들이 민간부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임금을 받고 고용 안정을 누리는 배경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같은 공공부문이 기본적으로 법률과 제도에 의해 수익이 보장되고 공정 경쟁을 제한하며 발생한 지대를 가져가는 특수성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걸까. 청년유니온이 서울교통공사 새 노조 출범을 맞아 며칠 전 낸 논평에서 “사회 공공성 강화에는 정의로운 노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공공부문은 마치 단단한 성채처럼 고립될 것이고, 언젠가 손쉽게 허물어지고 만다”며 던진 경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평생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외치며 ‘노동자들의 어머니’의 삶을 살다 간 이소선 어머님이 소천한 지 10년이 되는 9월3일을 앞두고 우리 안의 문지기들을 떠올리는 건 괴로운 일이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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