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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통신원 칼럼] 칠레의 ‘재택근무 보장법’

등록 2021-09-02 13:18수정 2021-09-03 02:37

김순배 | 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18살 미만 자녀나 60살 이상 여성 또는 65살 이상 남성 어르신을 돌보는 사람, 육아휴직 사용자, 장애인을 돌보고 있는 사람….

공통점은 칠레 법률 21342에 따라, 출근근무를 강요할 수 없고, 본인이 원하면 재택근무를 보장해야 되는 경우다. 코로나 상황이 차츰 안정돼 정상출근이 늘어나자 직장 복귀와 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을 만들어 지난 5월 공포했다. 칠레는 한때 하루 확진자가 9천명에 이르렀지만, 8월 들어 하루 1천명 이하로 안정되고 있다.

출근근무를 강요할 수 없도록 법으로 보장한 대상에는 고위험군도 당연히 포함된다. 60살 이상이거나, 고혈압·당뇨병 및 심혈관·폐·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장기이식자, 암환자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 등이다. 아울러 출근근무를 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치료비 본인부담금 100%와 사망보상금이 지급되는 보험을 고용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된다.

이런 법률은 내게도 적용됐다. 대학교에서 순차적으로 대면수업과 출근근무를 추진한다는 안내가 8월 초에 왔다. 1년 반 넘게 계속되는 재택근무 상황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잖아도 중학생 딸은 격주로 학교에 가고, 가는 날도 오후 1시면 수업을 마쳐서 재택근무가 끝날 경우가 걱정이었다. 딸의 점심은 어찌하나, 하루 종일 집에 혼자 두나, 고민하던 차였다.

대학교에서 위 사항에 해당되는지, 그에 따라 재택근무를 계속할지 의사를 물었을 때,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아내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재택근무를 계속한다고 해도 될까? 괜히 찍히는 거 아닐까? 외국인 교수라고 유별나게 군다고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결정은 재택근무였다. 법에 보장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해야 된다는 것, 가족이 먼저라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출퇴근을 하면서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것, 권리를 포기하면서 일을 우선하는 건 맞지 않았다. 그렇게 아내는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므로 재택근무를 계속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나? 위 경우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근무형태를 선택해서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재택근무와 출근근무 또는 2개 혼합근무 가운데 결정해야 했다. 법에 따라 출근을 강제할 수 없고 재택근무를 보장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선택권을 준 것이다. 소속 부서장 참조로 온 이메일에 다시 망설였다. 고민은 아내의 경우와 같았다. 어차피 비대면 수업을 계속해야 되는 상황에서, 굳이 출근해야 되나? 같은 연구소 직원은 “지금도 일하는 데 아무 불편이 없잖아요. 오히려 더 일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결국 나의 선택권에 대해서 학교 담당자에 확인하니, 한국에서 40년을 살면서 12년간 직장을 다닌 나 혼자만의 고민이었다. 출근근무는 꼭 필요한 사람만 하고, 혼합근무도 1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정해서 조금씩 근무하면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계약서에 재택근무 조항을 달면서 기간을 1년으로 명시했는데, 기간이 지났으니 선택한 근무형태를 계약서에 새로 반영하기 위한 조사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감염 위험을 줄이고 가족과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한다고 서로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에는 코로나바이러스 보험가입 증서가 날아왔다. 의무가입을 시켜야 되는 출근근무자가 아니지만, 나머지 교직원들에게도 보험가입 혜택을 준 것이다.

한국에서는 맞벌이 부부들이 어린 자녀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보내고 힘들어한다는 뉴스를 읽었다. 꼭 좋은 직장과 상사를 만나야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고 가족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칠레에서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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