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팅팅ㅣ중국 베이징대 교수
중국과 한국은 수교 기념일인 지난 8월24일 전·현직 고위 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중-한 관계 미래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양국 외교부 장관 합의 사안으로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향후 양국 관계의 발전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 경쟁 심화와 민간에서의 부정적 상호 인식 확산으로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는 중-한 관계에 매우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미래 발전을 도모하려면 현재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수교 이래 중-한 간 갈등은 대부분 제3자 요인에서 비롯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로부터 이어온 현재의 난국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북핵 고도화로 인해 시작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 우호관계와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국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과 ‘전략적 모호성’을 통해 최대한 균형을 찾으면서 비약적인 관계 발전을 이뤄왔다. 미래에도 양자택일이라는 시대착오적 방법론으로 회귀하는 것보다,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양국의 공동 이익에 더 부합한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 경쟁에서 이분법적인 진영논리와 가치관 담론이 많이 소환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쟁의 실체는 역사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선발주자의 ‘사다리 걷어차기’, 즉 추격자의 발전 속도를 늦추고 자국과의 격차를 벌리려는 전략의 반복에 더 가깝다. 문제는 냉전시대와 달리 현재 중-미 관계가 깊이 얽혀 있어 양자택일적인 논리로 규정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비록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폐쇄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 견제를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중국 경제와의 탈동조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중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중-미 관계를 신냉전이 아닌 전략경쟁으로 명확히 재규정한 것도, 출범한 지 7개월 지나도록 대중 무역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중-미 관계의 복합성에 대한 방증이다. 바이든 정부가 주창하는 ‘더 나은 재건’ 의제도 중국과의 단절보다는 역할 재분담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중-미 간 무역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45.7%나 증가했고,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 간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국익의 극대화와 국제적 위상 신장을 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강조하는 ‘전략적 자주성’과 맥락이 통하는 접근이다. 중국 또한 중-미 간의 진솔한 대화를 추구하면서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19 방역, 핵비확산 등 양쪽이 공동으로 꼽는 협력 분야에서부터 협력의 모멘텀을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 대해 균형적 접근을 유지하면서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유관국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다.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도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중-미 협력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해왔다. 이렇듯 중-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유관국들의 복잡한 새판짜기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양자택일적인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오늘날의 복합적인 정세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복원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과 한국은 수교 이래 비약적인 협력을 통해 서로의 성장에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였고, 이번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서도 뛰어난 회복력을 보였다. 이는 국가의 효과적인 통치 능력, 기업의 유연성과 창의성, 의료·통신 등 인프라 환경의 완비와 탄력적 운영, 지성과 과학주의에 대한 존중, 그리고 공동체 정신 등 다양한 요소들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결과물이다. 또한 양국은 패스트트랙(신속 통로) 통관 도입과 지역 방역 협력을 추진하는 데도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중국과 한국은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복합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양국 관계의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