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지로ㅣ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 총재 임기는 이달 말 끝난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갑자기 총재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발표해 총재 퇴임에 맞춰 총리직도 물러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언론 보도를 보면, 스가 총리는 9월 초까지 연임에 의욕을 불태웠고 여러가지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책이 엇나가면서 올해 들어 내각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 30% 아래까지 추락했다. 지난 8월에 치러진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총리의 측근이던 정치인이 각료를 사임하고 출마했지만, 야당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큰 차이로 졌다. 자민당 중의원의 40%가량이 3선 이하 소장파로 지금까지는 약체인 야당 덕분에 선거에서 쉽게 이겨왔다. 이들은 인기 없는 총리 밑에서 10월 말 임기가 끝나는 중의원 선거를 치르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런 공포가 자민당 안에서 ‘스가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스가 총리는 그것을 극복하면서 권력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스가 정권이 붕괴한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대책의 실패다. 하지만 그것은 스가 총리의 개인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의 정치 자세나 신념이 정책 실패를 가져왔다. 조금 더 짚자면 그의 전임자로 8년 가까이 장기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 이래 고착화된 자민당의 구조가 스가 정권의 실패를 불러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가 총리의 정치적 특징은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아베 정권을 지탱하는 관방장관으로 일했고, 기자회견은 일과였다. 그는 상당히 무뚝뚝한 스타일로 정부의 정책이나 정치 자세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이 나오면 “정확히 대처하고 있다”, “비판은 맞지 않다” 등 구체적인 설명을 거부하는 답변을 반복해왔다.
총리에 취임해서도 야당의 질문 등에 제대로 설명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명을 거부하는 모습은 아베 정권의 특징이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정부가 주최한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역구 지지자를 대거 초대하는 등 위법적인 접대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국회에서 118번이나 거짓 답변을 했다. 성심을 다해 국민에게 사실을 알린다는 민주 정치의 기본이 파괴된 것이 9년간 이어진 아베·스가 정치의 특징이다.
이런 태도는 권력자에 대한 반감만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 역량을 크게 훼손하게 된다. 코로나19 대책에 성공한 유럽과 미국, 대만의 사례를 보면 정치 지도자는 정보를 철저하게 공개하고 정부의 방침을 솔직히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정치에 대해 신뢰를 갖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일본에선 정반대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정부 밖에서 일반 국민들이 갖는 반감과 달리 정부 안에서는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관료가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를 두려워하고 지도자의 마음에 들 만한 정책을 제출해 비위를 맞추려 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그런 ‘비위 맞추기’는 엉뚱한 정책을 만들어 문제를 한층 악화시키게 된다. 일본에서는 병상이 부족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자택에서 방치되는 코로나 환자가 도쿄도에만 1만6천명(이달 6일 기준)이나 존재한다. 이는 정부 대책에 비판적인 전문가와 대화를 거부하고 기존 방침을 고집한 결과다.
스가 총리가 연임을 포기하면서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를 향한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금까지 정부 각료나 여당의 핵심 인사였으면서도 아베·스가 정권에서 아무런 정책적 실적을 올리지 못한 정치인들이 요즘 갑자기 새로운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참 기묘한 풍경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왜 그것을 좀 더 빨리 실행하지 못했던 것인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스가 정권의 정치적 실책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대해 성실하게 대응하는 민주정치의 기본이 회복되는 방향으로 이번 총재 선거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