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ㅣ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올해 여름 장마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체 무엇이 ‘진짜’ 장마였는지, 시작과 끝이 언제였는지 분간이 안 갔다. 기상청은 7월에 내린 간헐적인 비를 장마로 명명했지만 너무 기간이 짧게 나타나자 장마의 종료를 선언하는 데 주저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무더위가 오가더니 뒤늦게 찾아온 가을장마로 더 많은 비가 왔다. 장마의 유무 자체가 모호한 시대가 된 것이다.
눈앞에서 이렇게 기후가 변화하는데도 ‘기후변화’는 아무리 말해도 여전히 뒷전인 역설.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많이 얘기되고 있지 않냐, 이런저런 정책도 실시되고 있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라. 에너지를, 탄소배출을 현저히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보이는 곳이 하나라도 있는지? 적어도 내 주변엔 전무하다.
그런데 내가 내 눈으로 둘러볼 수 있는 주변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왜냐하면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 나라의 국민들이 곳곳에 퍼져 있는 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기후변화에 얼마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지조차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말할 수 있다.
상황이 전혀 다른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가 우리를 위해 다른 데에다 저질러 놓고서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일 말이다. 기후변화를 명목으로 해외에 벌인 사업이 이에 정확히 해당된다. 한국의 탄소배출권을 따내기 위해, 즉 우리가 더 뿜어낼 권리를 얻으려고 다른 나라에다 숲을 조성하는 사업에 대해 혹시 들어보셨는지? 만약 들어보지도 못했다면 그것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대충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역시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지목된 것은 다름 아닌 산림청이다. 산림청은 2050년 탄소중립에 기여하기 위해 이른바 ‘개도국 산림파괴 방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활동’, 즉 레드플러스(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Forest Degradation Plus; REDD+)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산림관리를 지원하면서 산림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도와준 대가로 우리는 탄소배출권을 획득하는데 당연히 가장 중요한 건 그 산림이 잘 보존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산림청이 레드플러스 사업으로 국내 최초로 해외탄소배출권을 따낸 캄보디아 툼링이 최근 조사되었다. 김한민 작가 겸 활동가, 생명다양성재단,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5월부터 3개월간 위성정보 분석 및 현지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산림 보전은커녕 대규모 산림 파괴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툼링 사업구역은 사업기간 중 산림의 약 3분의 1 이상이 훼손 또는 유실되었다. 메릴랜드대학의 인공위성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약 5만6084㏊에 달했던 이곳 산림 면적이 지난해 말에 약 3만5544㏊로 크게 줄었다. 사업 시작 후 37% 이상의 산림이 파괴된 것이다. 올해 1월~7월초까지 파괴된 2948㏊의 산림 면적은 이미 작년 전체의 수준과 비등하다.
설상가상으로 벌목되는 나무 대부분은 지역 사회에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산림청은 산림 파괴가 없다고 부인했다. 과거 비리 정치인의 청문회 때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로 일관하던 자세가 차라리 낫다. 명백한 증거인 항공사진과 현장 자료를 눈앞에 놔줘도 다짜고짜 부정부터 하는 자세를 보면, 남의 나라라고 함부로 하고도 남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이다. 이런 것이라면 ‘탄소배출권 해외사업’이라는 거창한 명칭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