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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 “기술통제·동맹규합”…중 “십년마일검으로 돌파”

등록 2021-09-13 17:13수정 2021-09-28 17:26

박현의 G2 기술패권 _02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올해 3월11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리 총리는 올해 전인대에서 “‘십년마일검’(십년 동안 칼 한자루를 가는) 정신으로 핵심 기술 연구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올해 3월11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리 총리는 올해 전인대에서 “‘십년마일검’(십년 동안 칼 한자루를 가는) 정신으로 핵심 기술 연구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미-중 기술 경쟁에서 과연 어느 나라가 승자가 될까. 결국 자국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강점을 최대화하는 쪽이 패권을 거머쥘 것이다. 중국은 광범위한 자원 동원력, 중앙정부의 통제력과 일사불란한 추진력, 막강한 제조 역량과 글로벌 공급망,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 등이 강점이다.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구조와 이민자 유입, 기축통화, 개방성과 혁신 역량, 강력한 동맹, 소프트파워 등의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6월8일 미국 상원은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대중국 법안인 ‘혁신경쟁법안’을 68 대 32로 통과시켰다. 민주·공화당 간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압도적인 표 차이다. 워싱턴에 정파를 뛰어넘어 대중국 견제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법안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온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와 중국 제재 등 각종 방안이 모두 포괄돼 있다.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는 하루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 법안은 냉전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중국의 발전 방식과 대내외 정책을 음해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외사위는 미국이 중국의 위협을 부각시켜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경제·기술 디커플링(분리)을 통해 중국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이런 반발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시장경제 국가인 미국이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 입안에 대대적으로 나서게 된 데는 중국이 빌미를 준 측면도 적지 않다. 시발점은 2015년 5월 발표된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정책이다. 향후 30년을 3단계로 구분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에 산업 최강국으로 우뚝 선다는 대전략이다. 반도체·로봇·전기차·바이오·항공우주 등 10대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2025년까지 달성할 시장점유율 목표치까지 제시했다. 반도체의 경우 2015년 13% 수준인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우리나라가 산업고도화 정책을 펴온 것처럼 어느 나라나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그 국가가 바로 중국이라는 점이 미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중국제조 2025는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미국 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국 산업 전문가인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배리 노턴 교수는 저서 <중국 산업정책의 부상(1978~2020)>에서 “중국의 이전 산업정책이 선진국의 모방을 통한 추격 전략이었다면 2015년부터는 4차 산업혁명의 정상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선진국을 추월하려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는 2017년 미-중 무역분쟁 초기에 기자에게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력에서 미국의 80% 선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견제하지 않으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포비아(공포증)’를 이용하려는 도널드 트럼프의 선동정치도 한몫했지만 저변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트럼프의 충동적이고 일방주의적인 관세 부과와 첨단기술 수출 통제 등 대중국 강경 정책이 중국을 더 자극했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이런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월5일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나온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발언은 중국이 느끼는 절박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십년마일검’ 정신으로 핵심 기술 연구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당나라 때 시인 가도가 ‘검객’이란 시에서 ‘십년 동안 칼 한자루를 갈아’ 불의를 무찔러 없애겠다는 뜻으로 썼는데, 지금은 어떤 목적을 위해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철저히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중국의 결연함이 느껴진다.

중국은 올해 양회에서 ‘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을 발표했는데, 무엇보다도 미국의 기술이전 통제에 맞서 첨단기술의 자립을 위한 속도전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5개년 규획이란 중국 정부가 5년 단위로 발표하는 국가경제 운영계획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7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립자강’의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7대 분야는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반도체, 뇌과학, 유전자·바이오, 우주심해탐사, 임상의학·헬스케어를 말한다. 리 총리가 말한 십년마일검도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응은 매우 치밀하고도 포괄적이다. 바이든의 전략은 크게 미국의 과학기술 역량 강화와 산업 부흥을 통해 중국과의 격차 유지, 대중국 제재 확대, 핵심기술·공급망별 동맹 규합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러시 도시 중국 담당 국장이 올해 6월 펴낸 저서 <긴 게임>(The Long Game)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그는 ‘미국 질서를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약화시키기’(Blunting)와 ‘건설하기’(Building)라는 두개의 전략을 펴야 한다고 제시했다. 기술·금융·공급망·정보·이데올로기·동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국의 부상하는 질서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패권 기반을 재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국 약화 전략을 추진할 때 ‘비대칭적 경쟁’ 전략을 채택할 것을 권고한 부분이다. 그는 “미국이 자원 동원력에서는 중국과 일대일로 맞붙을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이 투입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경쟁해야 한다”며 “중국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미국을 상대로 펼쳤던 비대칭 전략을 이제 미국이 부분적으로 차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100개 이상의 과학기술 계획을 추진하고 1조달러(약 1100조원) 이상의 재원을 산업정책에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관련 투자 규모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미국 패권 기반의 재구축을 위해서는 달러 패권 유지, 공급망 강화, 기초과학 투자와 산업정책 확대, 동맹국과 연구개발 생태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은 이미 의회에서 입법화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법안이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혁신경쟁법안’은 하원과의 조정 절차를 거쳐 이르면 올해 안에 의회를 최종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미래기술·과학·연구 분야에 5년간 최소 2천억달러(약 230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탄압, 지식재산권 침해 등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부과, 사이버 공격 가담자에 대한 금융거래 금지 등 중국을 직접 겨냥한 조항도 담겨 있다. 기존 제재 방식의 확대를 예고하는 것으로,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도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기술 경쟁에서 과연 어느 나라가 승자가 될까. 결국 자국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강점을 최대화하는 쪽이 패권을 거머쥘 것이다. 중국은 광범위한 자원 동원력, 중앙정부의 통제력과 일사불란한 추진력, 막강한 제조 역량과 글로벌 공급망,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 등이 강점이다. 국가 자본주의 체제 속성상 관료주의와 경직성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으나, 외국과의 교류 확대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업 활동 보장으로 기업의 혁신 역량을 키움으로써 지난 40여년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현재 고령화, 과다 부채, 성장 둔화, 임금 상승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선진국 진입 과정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중진국 함정은 압축성장에 성공한 중진국이 비용 상승과 경쟁력 약화 등으로 장기간 선진국 진입에 실패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중국이 민간기업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런 통제는 기업의 혁신 역량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노턴 교수는 중국의 산업정책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기술적·경제적·국제적 리스크가 내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변화무쌍한 첨단기술의 속성상 중국이 투자한 기술이 세계 선도 기술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 따른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연하지 않을지,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견제를 견뎌낼 수 있을지 등이다.

반면에 미국은 불평등 심화, 정치 양극화, 제조업 공동화 등에 직면해 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구조와 이민자 유입, 기축통화, 개방성과 혁신 역량, 강력한 동맹, 소프트파워 등의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세기간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경쟁자 일본·독일), 1950년대 스푸트니크 발사(소련), 1960~70년대 사회불안·스태그플레이션(소련), 1980년대 산업경쟁력 약화와 쌍둥이 적자(일본) 등 크게 4차례의 도전에 맞닥뜨렸다. 그때마다 미국 쇠퇴론이 회자됐지만 미국은 뉴딜정책, 과학기술 연구 지원, 시민권 개혁, 정보혁명 등으로 돌파해낸 경험을 갖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트럼프 등장,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으로 또다시 쇠퇴론에 직면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재건과 중국 견제를 기치로 내걸고 중국을 모방한 산업정책과 보호주의 색채가 강한 정책들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자율성과 개방성이라는 미국의 강점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이미 중국과 경제적으로 실핏줄처럼 엮여 있는 동맹국들을 대중국 견제 전략에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관건이 될 것이다.

박현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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