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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안전하지 않은 ‘안전 극장’ / 구본권

등록 2021-09-14 14:26수정 2021-09-16 14:13

20년 전 일어난 ‘9·11 테러’는 민간 항공기가 최고의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시키며 항공여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다. 강화된 몸수색과 알몸 스캐너를 거쳐야 하고 액체는 휴대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는 9·11 이후 도입된 각종 비행 안전규제가 실제로 안전도를 높이지 못하면서 ‘안전해졌다’는 착각만 주는 ‘안전 극장’이라고 말한다. 항공여행의 안전도를 높인 실질적 조처는 조종실 문에 잠금장치를 단 것과 승객들에게 맞서 싸우도록 가르친 것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올리버 버크먼 <합리적 행복>)

안전극장이 생겨나는 배경엔 정책 담당자들이 뭔가 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국내에서 심야시간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막는 ‘게임 셧다운제’도 대표적인 안전극장의 사례다. ‘게임 셧다운제’는 지난달 관계장관회의에서 폐지 방침이 확정돼, 올해 안에 입법이 이뤄질 예정이다.

게임 셧다운제의 도입과 폐지 과정은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도입 5년 만에 폐지된 ‘인터넷 실명제’와 닮았다. 문제가 심각한데 왜 대책을 내놓지 않느냐는 분위기에 밀려 만들어졌지만 법리에도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어 폐기된, 국내 고유의 창의적인 입법 사례다. 안전극장의 잇단 실패는 보여주기 행정도 원인이지만, 배경엔 깊은 토양이 있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기술과 법을 통해 편리하고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온라인 게임이나 댓글은 다양한 효과를 갖고 있는데, 부작용만 쏙 제거할 묘책은 없다. 양면성을 지닌 도구는 사용자가 깊은 이해와 주의를 갖고 책임감 있게 사용할 때 유용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의 빛과 그늘을 함께 가르치고,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시민교육을 통해 대처하는 게 효율적이다. 법과 기술을 만들어 디지털 세상에서 내 자녀를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부모가 디지털 세상 속 자녀를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끝없이 변화가 몰아치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기 어지러울 지경이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부모 노릇은 배울 것과 할 일이 더욱 많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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