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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유엔의 위기

등록 2021-09-26 18:26수정 2021-09-27 02:32

존 페퍼ㅣ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이달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그의 악명을 만든 일상적 왜곡과 과장으로 가득한 연설이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연설 내용이 아니라, 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시의 다중모임 관련 규정과 유엔의 촉구에도 보우소나루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는 점이었다.

지구는 현재 엄청난 위협에 직면해 있다. 팬데믹은 전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기후변화는 즉각적인 위험이다. 전쟁은 예멘, 에티오피아, 시리아를 황폐화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유엔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엔은 보우소나루에게 백신 접종을 강요할 수 없고, 총회 연설을 막는 위험을 감수할 수도 없었다.

이런 불량 행위자들의 문제는 오랫동안 유엔을 괴롭혔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주적인(종종 이기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부상은 국제사회에 추가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민족국가들은 국경 내에서 규칙을 결정하는 배타적 권한인 자주권 원칙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자주권의 결점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다. 부자 나라들은 공동선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백신을 적정량 이상 확보했다. 백신 형평성에 관한 글로벌 대시보드(Global Dashboard for Vaccine Equity)를 보면 최소 1회 접종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고소득 국가는 61.51%인 반면, 저소득 국가는 3.31%에 그쳤다(9월21일 기준).

현실을 직시하자. 부자들이 세상을 운영하고 유엔은 그걸 바꿀 힘이 없다. 유엔은 기후변화에 대한 도전에도 나서지 않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매년 당사국총회(COP)를 소집할 책임이 있는 기구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1차 총회(COP21)는 기후변화에 관한 구속력 있는 조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협정 당사자들이 한 약속은 지구 온도의 재앙적 상승을 억제할 만큼 빠르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여기서도 잘못은 중국과 미국, 일본, 독일, 한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해온 부자 나라들에 있다.

많은 국가들은 또 다른 치명적 재앙인 전쟁에 직면해 있다. 유엔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에티오피아의 티그레이에서 싸움하고 있는 이들을 분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재건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난민 물결이 얼마나 줄어들 수 있는지 상상해 보라.

이런 일 대신 유엔의 구실은 인도적 지원 제공 임무로 강등됐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은 지상에 안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유엔 평화유지군 예산의 대부분은 기존 13개 임무에 투입된다. 유엔은 전세계의 비상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유엔 긴급평화서비스(UNEPS)가 있다면 그 격차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지지를 받고 있으며 미 의회에서 두차례 법안이 올라왔다. 영구적이고 전문적인 비상 대응 부대가 없다면 유엔은 전세계 위기 대처에서 늘 뒤처질 것이다.

아마도 유엔에 가장 큰 도전은 민족국가들이 국제기구에 충분한 권한을 위임하기 거부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보우소나루와 같은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매일 ‘글로벌리스트’를 공격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경 내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대부분의 강압적 지도자들은 유엔을 회의적으로 본다.

많은 자금이나 제도적 신뢰 없이 강력한 반국제주의 철학에 직면해 있는 유엔은 회원국들에게 인권, 환경, 법치 보호를 강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집행 메커니즘이 없으면 유엔은 전세계의 보우소나루가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불행히도 보우소나루주의(Bolsonarism)라는 질병이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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