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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기철 칼럼] 네거티브 말고 ‘인생공약’을 보여 달라

등록 2021-09-29 17:05수정 2021-09-30 09:20

역대 대선에서 네거티브는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대선의 최대 변수는 뭐라 해도 시대정신이다. 누가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이 바라는 정책과 비전을 올곧이 제시하느냐 여부다. 자신의 삶과 혼을 오롯이 담아낸 ‘인생공약’이 시대와 맞아떨어진다면 천하무적이다.

백기철|편집인 

대선 판이 이른바 네거티브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여야 선두 주자들이 제각각 대형 의혹 사건을 혹처럼 달고 뛰는 형국이다. 정치권, 언론, 검찰, 공수처 등 모두가 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장동 특혜 의혹’,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은 대선 판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가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역대 대선에서 네거티브는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검찰 수사에서 의외의 스모킹건이 나와 누군가 단죄되거나 공방 와중에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쉽지 않다. 대선은 다른 요인으로 결판난다.

대선의 최대 변수는 뭐라 해도 시대정신이다. 다시 말해 누가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이 바라는 정책과 비전을 올곧이 제시하느냐 여부다.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면 근거가 명확지 않은 네거티브에는 끄떡없다. 자신의 삶과 혼을 오롯이 담아낸 ‘인생공약’이 시대와 맞아떨어진다면 천하무적이다.

역대 대선을 보면 네거티브의 파괴력은 제각각이었다.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비케이(BBK) 사건’은 적어도 2007년엔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아니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병풍’ 의혹도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결정적 패인은 아니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네거티브가 전가의 보도는 아닌 셈이다.

대선 판이 아무리 거칠어도 국민은 항상 냉엄하다. 네거티브의 실체와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그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훤히 꿰뚫어본다.

정치 사법화의 극한을 달리는 대선이지만, 사건들 실체를 신속히 밝히는 건 중요하다. 후보 검증도 선거의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비케이 사건처럼 국민을 우롱하는 사법 막장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수사기관들은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대장동 의혹은 온 국민의 역린인 부동산 문제인 만큼 파장이 크다. 토건비리, 법조비리, 2세 비리, 재벌비리 등 복마전 집합소 같은 양상이다. 특검으로 실체를 규명해야 할 수도 있다. 공공 환수를 많이 했다지만 비리 온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재명 지사의 책임도 적지 않다. 다만 큰 꿈을 꾸는 이 지사가 이런 대형 사업에서 개인적으로 편취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고발 사주 의혹은 윤석열 검찰의 도덕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사건이다. 사건 성격 면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를 입증하는 태블릿 피시가 등장하는 순간 검찰도 발을 뺄 수가 없었다. 고발장을 건넸다는 손준성 검사와 윤 전 총장의 연결고리가 입증되면 걷잡을 수 없을 테지만 그리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수사와 맞물린 공방은 더욱 거세지겠지만 어느 쪽이든 ‘상처뿐인 전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네거티브에 힘쓰는 것보다 자신의 인생공약을 내걸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게 더 큰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인생공약은 후보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정책이다.

인생공약의 대표 격은 노무현의 수도 이전이다. 수도 이전은 약자 편, 소외받는 지역 편에 서려 했던 노무현의 삶이 녹아든 상징적 정책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 역시 연방제 통일 방안에서부터 다져온 그의 오랜 인생 역정이 담겼다. 이명박이 비비케이의 진실을 은폐하고도 승리한 것은 시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리더십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기반한 철학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인생공약으로 볼 수 있다. 이낙연 전 대표의 경우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인생공약에 가깝고, ‘신복지’에는 총리 시절 국정 경험이 촘촘히 녹아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의 인생공약이 뭔지는 불분명하다. 공정의 문제, 사법정의 같은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최근 잇단 실언은 그가 인생공약을 내놓을 정도의 삶의 궤적이나 정책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윤 전 총장의 진짜 문제는 고발 사주 의혹이 아니라 이것인지도 모른다. 홍준표 전 대표는 빈한한 가정 출신에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에서 보듯 인생공약의 기반이 나름 있다. 하지만 과거 경남의료원 폐쇄와 최근 핵 무장 주장에서 보듯 다소 종잡을 수 없다.

남은 5개월 동안 숱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결국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는 이한테 기회가 올 것이다. 네거티브에 힘쓰는 건 그만큼 시대정신에 맞는 옷을 입을 준비가 덜 돼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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