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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해진의 세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등록 2021-10-10 20:59수정 2021-10-11 02:32

조해진ㅣ소설가

우리나라의 십대부터 삼십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소식을 접한 날, 최진영의 단편소설 ‘일요일’(<일주일>, 자음과모음)을 읽었다. 이 소설은 성당 유치원에서 처음 만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일요일마다 습관처럼 만나온 세 친구가 십대를 통과하며 그 처지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과정을 담는다. 부모가 교수인 ‘도우’는 외고에, 중산층으로 보이는 ‘민주’는 일반고에, 그리고 셋 중 유일하게 전셋집에 살고 부모의 직업이 블루칼라인 ‘나’는 특성화고에 진학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셋은 잘 만나지도 못할뿐더러 어렵게 마주앉아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게 된다.

도우와 민주가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니는 동안 ‘나’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다가 고3이 되면서부터 이르게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회사에서 ‘나’는 선배 노동자들에게서 젊은 사람들이 편하게만 일하려 해서 문제라고, 이기적이고 약해빠졌다고, 나라 경제와 공동체를 위해 그저 견디라는 말을 듣는데 사실 이런 맥락의 말은 ‘나’의 부모도 해왔다. 먹고사는 일은 원래 다 힘드니 중간에 포기해 버릇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투의 말. 그런 말에 ‘나’는 애매하게 웃고 말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좋아졌는데, 좋아졌다고 하는데, 왜 나는 어른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견디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이 품는 의문은 여러 화두를 던지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지원 정책이 많이 생겼다지만 청년층의 계급은 이전보다 세분화됐고 당연히 소외된 청년의 박탈감 역시 커졌는데도, 예전의 노동 강도랄지 고생한 시절과 단순하게 비교하며 ‘견딤’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이라는 자각도 드물어 보인다. 우리가 헤아려야 할 지점은 바로 이 세분화된 박탈감이어야 할 테다.

최근에 나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청년층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데 같은 청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줌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는 노트북 화면 속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혹여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온기가 있는 말로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문장이 없었다. 물론 말은 말일 뿐일 때가 많고 학생들이 내 말을 생뚱맞게 여기며 크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힘든 건 다들 마찬가지라거나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혹은 고생은 성장에 필요하다는 식의 낡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견뎌’나 ‘버텨’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그런 말은 위로가 되기보다 오히려 무딘 폭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을 테니까.

며칠이 지난 지금, 나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시간의 태엽이 감긴 시계도 작동을 시작한다는 걸 떠올리고 있다. 우리는 죽음과 약혼한 채 세상에 나온다는 문장(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돌베개)도…. 언젠가 우리 모두 죽을 테니 미리 죽음과 친해질 필요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다. 작년에 마음이 힘들어 몇차례 상담을 받았는데, 그때 상담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마음(의 구조)은 플랫폼이고 감정은 기차라고, 감정은 대개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고, 그렇게 흘러간 감정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그때도 역시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된다고.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제목처럼 때때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내가 받은 위로를 이렇게나마 나누고 싶다. 생의 태엽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세상은 당신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더 있으리란 걸 늘 확신하는 사람들이 곁에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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