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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사랑 싸움

등록 2021-10-14 16:57수정 2021-10-15 02:33

정영목|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어릴 때 다니던 학교의 교훈이 “믿음 소망 사랑”이었다. 이것이 기독교와 관련된 표현임을 알게 된 것은 나중 일이고, 어린 마음에는 그저 두 글자씩 묶인 세 단어의 울림이 왠지 따뜻했다. 특히 평소에 쓰지 않던 소망이라는 말은 어떤 내밀한 부분에 닿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그것이 영어로는 ‘hope’의 번역어로, 더 평범한 ‘희망’이라는 말로도 바뀔 수 있다는 걸(공동번역 성서에는 그렇게 나온다) 알았을 때는 좀 깨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굳이 소망으로 옮긴 마음은 소중해 보였다.

그보다 충격을 받은 것은 여기에서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인용된 책이라는 흠정 영역판에서는 ‘love’가 아니라 ‘charity’(채리티)라는 걸 알았을 때였다. “믿음 소망 사랑” 앞에 등장하는, 종교와 관계없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로 시작되는 유명한 구절에서도 사랑은 ‘charity’다. 나처럼 신학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사랑보다는 자선을 먼저 떠올리게 되며, 따라서 “faith hope charity”를 “신앙 희망 자선”으로 옮겨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만일 이것이 교훈이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 번역이란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번역이 또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이가 더 들어 이 사랑 번역에 피가 묻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charity’가 ‘love’였던 시절이 있었다(지금은 많은 영역판에서 ‘love’를 사용한다). 보통 ‘charity’로 옮기던 라틴어 ‘charitas’(카리타스: 신의 사랑, 인간의 박애를 뜻한다)를 ‘love’로 표현한 것은 윌리엄 틴들이 번역한 신약성경(1526년)이었다.

미국 드라마 <튜더스>에는 왕의 결혼 무효 논쟁을 촉발하여 결국 영국이 교황에게서 벗어나게 만든 헨리 8세의 애인 앤 불린이 시녀들을 모아 놓고 틴들의 성경을 가리키며 새 시대가 왔으니 마음대로 읽어도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야흐로 종교개혁의 시대였다. 앤과 틴들은 개혁의 선봉에 섰던 마르틴 루터의 영향권에 있었고, 틴들에게 개혁의 핵심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고 신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 해석 권력은 교회 권위의 기초였기 때문에 성경 번역은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가톨릭계 최고 지성인 토머스 모어가 루터와 틴들 공격에 나섰다. 브라이언 모이너핸의 <신의 베스트셀러>(김영우 역)에 따르면, 모어가 특히 문제삼은 틴들의 몇가지 오역 가운데 하나가 ‘love’였다. ‘charity’는 교회에 대한 자선 기부의 근거가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가 “회중”이었는데, 틴들이 “교회”라고 통용되던 고전어 ‘ecclesia’(에클레시아)를 그렇게 옮긴 것은 실제로 가톨릭교회 제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두 사람은 이후 욕설을 퍼부어가며 시끌벅적하게 논쟁을 주고받는데, 이 논쟁을 간단하게 정리한 사람은 헨리 8세였다. 그는 영국 교회 수장 자리에 올라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모어를 1531년에 참수하고, 1년 정도 뒤 결혼 문제로 역린을 건드린 틴들은 이단을 구실로 화형에 처한다(앤 불린은 그 석달 전에 참수한다).

그러나 민중 속에 자리를 잡아가던 영어 성경은 살아남았다. 당대의 구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틴들의 번역은 후대의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결국 종교를 넘어 영어 자체에까지 영향력을 넓혀갔다. 1611년에 나온 흠정역은 80% 이상 그의 번역을 가져온 틴들 번역판이었다. 다만 이 공인본에서 틴들의 “사랑”과 “회중”은 다시 “자선”과 “교회”로 돌아가 있었다. 이제는 신교가 제도 권력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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