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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어쩌고저쩌고’의 공허한 30년

등록 2021-10-17 18:40수정 2021-10-18 02:32

그레타 툰베리가 28일(현지시각)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레타 툰베리가 28일(현지시각)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김산하ㅣ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있다. 아마 ‘언행일치’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말과 행동이 합치해야 한다는 명제는 굳건하다. 가령 정치인에 대한 거의 모든 비판은 이 한가지 원칙에 근거한다고 해도 아마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입으로 두 말, 아니 오만 가지 말을 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과 행동이 하나 됨을 추구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사실 사람이기에, 아니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가치이다. 말이 없는 동물들은 행과 일치시킬 무엇이 없다. 그들에겐 오직 ‘행’(行)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동물행동학은 그 행동을 연구함으로써 동물의 온갖 숨은 이야기를 밝히는 학문이다. 동물을 인터뷰할 수만 있었다면 아마 분야 전체가 폐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창조한 인간은 말과 정신의 세계라는 새로운 한 차원을 추가시켰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느냐의 세계. 그것과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현실이 상응하거나 최소한 같은 방향을 가리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토록 상식적인 얘기가 바로 지난 9월28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정상회의에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한 연설의 골자이다.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한답시고 지난 30년간 한 모든 선언, 약속, 계획을 그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블라, 블라, 블라.” 번역하자면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그 공허한 말속에 미래세대의 희망이 익사할 지경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새로운 국제적 유행어가 된 이 블라, 블라, 블라는 그 어떤 논증이나 분석보다도 철저하게 껍데기뿐인 인류 말잔치의 실상을 잘 포착한다.

어쩌고저쩌고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10월7일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환경장관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영상 축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저탄소 경제 전환의 경험을 국제사회와 공유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다가 갈수록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아니 우리가 언제 저탄소로 전환했다고? 거의 시작도 안 한 마당에. 엄밀히 말하면 그 발언의 시제가 과거형인지 미래형인지 아리송하긴 하다. 어쨌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고작 6.6%인 세계 최하위 국가가 할 말은 아니다. 마치 아직 학기 시작도 안 했는데 졸업의 경험담을 공유하겠다는 격이니 말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겐 어쩌고저쩌고로 들릴 수밖에.

툰베리가 지적한 것처럼 비단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본격화된 지난 30년간 전세계 거의 모든 정부와 국가 정상이 뱉은 말들이 다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인류가 맞이한 사상 최대 위기의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보여준 집합적 모습이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의지를 거의 완전한 내팽개친 탓에 이러한 어쩌고저쩌고가 판친다. 지금 당장부터 파격적인 변화를 실행하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한 것인데도, 뭐가 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2050 탄소중립. 모든 경제 영역의 저탄소를 추진한다면서 자연 영역인 산림의 반생태적 수종 교체를 떡하니 내세운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3+1’ 전략. 모두 어쩌고저쩌고이다.

최근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극단 기후에 노출됨에 있어서 세대 간의 불평등’이라는 논문은 미래세대가 기성세대보다 얼마나 큰 피해를 겪을지, 그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가령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1960년에 태어난 조부모에 비해 폭염과 같은 극단적 기후현상을 2~7배가량 겪을 것이라고 연구는 말한다. 공허한 말은 말로 끝날지 모르지만, 그 여파는 오롯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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