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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석희 보도’가 드러낸 건 무엇인가

등록 2021-10-27 18:09수정 2021-10-28 10:07

일부 언론사의 많이 본 기사 순위에 오른 ‘1.5룸’ 기사. 민언련 보고서 제공
일부 언론사의 많이 본 기사 순위에 오른 ‘1.5룸’ 기사. 민언련 보고서 제공

[편집국에서] 박미향|문화부장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다시 대중의 입길에 올랐다. 한 연예전문 매체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심 선수가 한 코치와 사적으로 나눈 개인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인데, 그 내용이 자극적이다. 동료에 대한 험담과 ‘브래드버리 만들자’ 등이 언급되어 있다. 브래드버리는 2002년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 남자 1000m 결승에서 앞선 주자들이 충돌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우승을 한 오스트레일리아 선수의 이름이다. 페어플레이를 해야 할 운동선수로서는 부적절한 고의충돌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수의 언론이 즉시 그 매체의 보도를 인용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이다. 심 선수의 인성 등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댓글이 온라인 세상에 도배됐다. <한겨레>는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브래드버리’ 부분만 빙상연맹 쪽의 입장을 취재해 보도했다. <한겨레>가 잘했다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언론들이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빨리 보도한 데는 얻는 게 있어서다. 자극적인 기사의 빠른 보도는 조회수(PV)와 바로 연결된다.

언론이 조회수 압박에 시달린 지는 꽤 오래됐다. 조회수 경쟁이 질 좋은 기사 양산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현실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 허난성 어딘가를 운행하는 버스 안에서 생리혈이 묻은 여성 승객을 감싸준 버스 기사의 이야기라든지, 외국의 이름도 생뚱맞은 동네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부부싸움이라든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유명인의 이혼 소식과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정치 기사 등이 일부 매체의 ‘많이 본 뉴스’ 상위에 자리잡고 있다.(낚시성 제목의 효과는 상상 초월이다.) 심지어 3년째 언론에 등장한 뉴스도 있다. ‘1.5룸 청소 100만원’ 기사는 마치 최근 뉴스인 양 지난 17~18일 여러 매체의 ‘많이 본 뉴스’에 올랐는데, 이미 2019년 보도된 온라인 화제성 기사다.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담론, 낮고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등을 다루면서도 확증편향에 편승하지 않고 팩트에 충실한 이른바 ‘좋은 기사’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좋은 얄팍한 배설용 기사들이 ‘많이 본 뉴스’ 상단을 온통 차지하는 그날은 생각만 해도 암담하다.

언론단체들은 ‘한국 언론의 수준’을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하고, 정치권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내세워 채찍질하기 급급하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언론은 처절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 언론이 처한 환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언론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다. 뉴스 유통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건 언론사가 아니라 포털이다. 언론사도 기업이다. 생존을 위한 수익창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네이버는 ‘2019 미디어 커넥트 데이’ 행사에서 기사를 공급하는 언론사들에 지급했던 전재료를 없애고 뉴스로 발생하는 광고수익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콘텐츠로 모인 재원은 언론사별 충성도에 따라 배분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행사의 골자였다. 광고수익 배분 기준엔 조회수도 있다. 언론사들이 조회수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네이버도 할 말은 있다. 최근 네이버의 한 관계자와 한 통화에서 그는 ‘결국 포털의 이런 정책이 자극적인 기사 생산에만 일조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구독자 수와 재방문율을 계량해 반영하고 광고형, 에스엔에스(SNS)의 ‘카더라’식, 베낀 기사 등은 인공지능이 걸러내는 등 감점 요인도 마련했다고 했다. 열독률도 반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안전장치를 마련할 게 아니라 애초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언론이란 공기가 망가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독자들의 몫이 된다.

심 선수 건의 이면엔 그와 소송 중인 조재범 전 코치가 두 사람이 나눈 개인 메시지 유출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는 게 최근 밝혀지고 있다. 언론이 조회수란 늪에 빠지면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만 득세한다. 뉴스의 입체적인 맥락을 다루기 위해선 조회수 경쟁보다는 다른 기준과 룰이 필요하다.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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