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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인도는 ‘지옥’이라야만 했을까?

등록 2021-11-04 16:11수정 2021-11-05 02:31

지난 4월26일 인도 뉴델리의 한 화장장에서 코로나19 사망자를 집단으로 화장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4월26일 인도 뉴델리의 한 화장장에서 코로나19 사망자를 집단으로 화장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환상타파] 전명윤|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2021년 4월 <로이터>가 드론으로 찍은 인도의 화장터 모습은 누가 봐도 흡사 지옥문을 열어젖힌 것 같았다. 한장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모든 매체가 인도의 2차 코로나 유행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모든 조어는 ‘지옥’이라는 두 글자로 집약됐다.

한국 매체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도냐?’ ‘혹시 인도에 머무는 교민 중에 인터뷰 가능한 사람이 있으면 연결해 달라.’ 수소문 끝에 인도에서 근무하는 한 대학교수를 연결해줬다. 그나 나나 분명히 사회자가 인도를 ‘지옥’으로 몰아갈 텐데, 그보다는 왜 인도에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자고 의견을 모았다.

미리 받은 대본에는 지옥이란 단어가 여섯번이나 나왔다. 인도는 반드시 지옥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기사는 조회수가 높게 나오고, 케이(K) 방역의 완전무결함을 주장하는 어떤 독자들이 온갖 게시판과 에스엔에스(SNS)로 퍼 날라줄 테니까. 지인인 대학교수는 애처로울 정도로 ‘지옥’이란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는 사회자를 피해 끊임없이 도망 다녔다. 우리는 인터뷰가 끝나고 왜 우리가 언론도 고민하지 않는 ‘그 나라의 진실’을 위해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지 씁쓸함을 느꼈다.

며칠 후 인도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졌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다. 이미 몇몇 인도 언론은 <로이터>의 보도 행태를 전형적인 왜곡 보도로 규정한 터였다. 인도 내에서 지한파로 불리던 지인들은 이미 한국 언론 그리고 에스엔에스가 그들 나라에 쏟아낸 막말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요즘은 유튜브든 트위터든 자동 번역 기능이 있다. 사용 인구가 많지 않다고 해도 한국어의 숨은 장벽 같은 건 이제 없다.

매체는 늘 에스엔에스의 어느 한 귀퉁이에 있는 가장 독한 말을 찾아내 그걸 기사화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 생각한다고 오해하고, 이 오해는 종종 돌이킬 수 없게 깊어진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인도 쪽에 가해를 한 건가?’

인도인들의 분노는 이해할 만했다. 그때도 지금도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와 사망자 수 1위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인구 백만명당 확진자 수로 따지면 미국은 현재까지 인도보다 5.7배가 많고, 사망자는 7배가 많다. 이 비율은 몇몇 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유지되었지만, 한국 언론 그 누구도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을 보면서 ‘지옥’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인도인들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그들은 이를 일종의 인종차별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그들의 지적에 대해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원인은 <로이터>의 그 이미지 때문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인도는 현대의 많은 나라가 사각의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죽음의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것과 달리 죽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로이터>가 찍은 그곳은 대도시에는 비교적 흔한 노천 화장터였다. 사망자가 급증하며 그 노천 화장터에 평소보다 많은 주검이 화장되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만약 다른 나라였다면 그저 전기 화장터의 연기가 24시간 끊이지 않았다 정도로 끝날 일이기도 했다. 인도의 개방된 화장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그게 그저 지옥으로만 보였을 뿐이고, 이 기준대로라면 갠지스강 가의 성지 바라나시는 3천년째 생지옥이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도의 그 코로나 ‘지옥’이 사실 아이(I) 방역 홍보에만 몰두하며 조기에 코로나19 극복을 선언하고, 그걸 정권의 치적으로 돌리기 위해 모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순간 제거해 버린 탓에 발생한 정치적 재앙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그 기사의 조회수는 형편없었다. 재미있는 건 그 기사의 제목에도 데스크에 의해 ‘지옥’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결국 내 변명은 한국에서도 인도의 지인들에게도 어떠한 해명이나 위로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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